Hyper-Theory
최신 글
-
관측과 사변 사이, 서정(抒情): 이수진 개인전 《폴리포니 클럽: 몬더그린 확장본》 비평 2025.12.20 관측과 사변 사이, 서정(抒情) *본문은 퍼블릭아트 2025년 11월호에 수록되었음.윤태균 실체는 인간으로부터 물러나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실재가 아니다. 오직 유동하는 관계적 사건만이 실체이다. 사건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들과 그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힘, 그리고 정보의 총체를 우리는 사건이라 칭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건에 관여하는 모든 정보는 실체를 생산한다. 우리가 명백하다고 믿는 감각 정보와 그 정보를 엮어 냄으로써 인식되는 경험, 그리고 인류사적 과정을 통해 견고한 믿음 기반을 가지게 된 과학과 그것이 당연하게 제시하는 지식. 이처럼 쉬이 믿을 수 있는 요소, 그러니까 우리가 직접 감각하고 서로에게 담보하는 그 ‘사실’은 물론 실체의 중요한 특질 중 중요한 일부이다. 그러나 실체는 .. -
연산하는 영혼, 확장된 표현의 회로에서 - 박다희 퍼포먼스 리뷰 비평 2025.12.16 *본문은 《2025 Platform-L Live Arts Program》 도록에 수록되었음. 플랫폼엘 platform-l.org 윤태균(독립 큐레이터)언제부터인가 컴퓨터는 인간에게 단순한 도구가 아니게 되었다. 금융, 제조업, 행정은 컴퓨터에 의해 자동화된 지 오래다. 인간은 알고리즘을 업데이트하고 피드백 사이에서 발생하는 버그를 점검한다.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자면 인간이 컴퓨터에 의해 도구화된 풍경일 테다. 이제는 ‘컴퓨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에도 개념적 오차가 발생한다. ‘연산 기계’로서 컴퓨터의 기능과 작동은 이제 상품으로서 하드웨어 개체를 넘어 거대한 현실의 추상태에 안착한다. 이 추상태는 인터넷과 웹이라는 전산망의 총체일 뿐만 아니라, 그것의 사용자이자 데이터의 트랜스듀서(변환 장치)인 인간의 인.. -
『큐트 가속주의』 역자 서문 서문 2025.11.15 Translator’s Introduction by 윤태균말랑하고 포근해 보이는 이 책은 실로 강한 산성(acid)이다. 귀여움은 “모든 견고한 것을 녹여내리는” 생화학적 인자이다. 그러나 이 녹아내림은 귀여운 슬라임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남성적 가속주의는 성인 신체의 상실과 절단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이를 통한 쾌락)을 추동하지만 귀여움은 디지타마(デジタマ)처럼 신체를 알로 되돌려 가상적 신체로 다시 태어나도록 한다. 보수적인 육체의 감각을 초월한 욕망은 새로운 (귀여운) 기관을 수태한다. 이 새로운 기관은 어떠한 인준된 권위나 신체의 스키마를 충족하려는 목적 따위는 가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귀여움은 상대의 마음을 동하여 어떤 신체적 규범을 재확인하게 하는, 그런 보수적 정동의 진부한 사건이 아.. -
퍼포먼스 《괄호로 묶인 (곳)》 서문 서문 2025.11.11 전파의 흐름은 공기권을 따라 이동하며, 시야에 포착되지 않는 방식으로 공간을 재배열한다. 《괄호로 묶인 (곳)》은 이 비가시적 매질이 인간의 감각을 어떻게 다시 배치하는지 탐색한다. 무대 곳곳에는 소형 SW 송신기, SDR 수신 장치, 안테나를, 분절된 음향 패치가 자리하고, 전파 신호의 간헐적 도착과 미세한 지연이 표면 곳곳에 흔적을 남긴다. 일정한 주파수 위에 놓인 신체들은 잦은 미끄러짐과 작은 떨림을 경험하며, 의미화 직전에 머뭇거리는 음향의 껍질을 얇게 중첩한다.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는 공기적 매개층을 보이지 않는 거주 막으로 규정한다. 호흡과 기압, 습도, 정동의 무게가 얇게 얽힌 이 공간은 세계와 인간을 매개하며, 서로의 상태를 퍼지게 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전파는 .. -
[번역] 앤드류 노먼 윌슨 - 미술 비평가를 믿는가? 번역 2025.10.31 앤드류 노먼 윌슨(Andrew Norman Wilson)본 호에서 앤드류 노먼 윌슨은 예술에 의미를 부여하는 글쓰기가 얼마나 보람 없고, 무력하며, 대가 없이 감내해야 하는 타협으로 구성되는지에 대해 서술한다.진실은 이렇다. 비평가의 글은 대개 읽히기 위해 작성되지 않는다. 일단 출판되고 나면, 그 가치는 작가의 이력서에 기입되는 한 줄, 프레스 패킷의 한 페이지, 인스타그램 게시물, 그리고 갤러리 웹사이트의 하이퍼링크된 인증 도장으로 전환된다. 리뷰는 파괴적일 필요도, 지나치게 찬양할 필요도 없다. 미술 산업에는 품질을 규제하는 표준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평점 체계 역시 없다. 리뷰는 단지 전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며, 그 전시에 포함된 작업이 미술사의 일부라는 것, 미술사가 가치 있다는 .. -
[번역] 레이 브라시에 - 가속주의 (2010, Backdoor Broadcasting Company에서의 녹음) 번역 2025.10.26 Ray Brassier, “Accelerationism” (2010, Backdoor Broadcasting Company에서의 강연 및 대담 녹취본) 번역: 윤태균 나는 오늘 닉 랜드(Nick Land)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철학적으로 접근할 것이며, 그 이유를 먼저 설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접근이야말로 가속주의의 정치적 함의가 무엇인지,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지 혹은 실행 가능한지 이해하기 위한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가속주의 정치가 가능하고 타당한 것인지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그 가속주의적 기획(accelerationist program)의 내적 개념적 정합성(conceptual intelligibility)과 대면해야 합니다. 우리 중 상당수는 어.. -
초월적 기계에 관하여 1: 현실 너머의 에로티즘 기계 비평 2025.10.04 *본문은 TUNG PRESS VOL.7 MACHINE 에 수록되었음. 초월적 기계에 관하여 1: 현실 너머의 에로티즘 기계 윤태균 (독립 큐레이터) 일러두기:1. 본문은 이론에서 ‘변증법적으로’ 탈각된 (비)논리이다. 또한 ‘사실’로 밝혀진 지식만을 참조점으로 삼지 않는다. 되려, 개연성 없는 서사를 추진한다. 자신이 문제시하고자 하는 현실의 지점을 직접적으로 언어화하기 보다는, 그 문제 주변을 우회하여 언어로 밝혀질 수 없는, 오로지 에너지의 운동으로 달성되는 그 역학적 관측 지점의 포착이다. 2. 본문의 몇 문단은 VT세트(Verse-Transcriber set)를 이용하여 작성되었다.[1] 기계의 형이상학적 지능과 이성의 문제에 침착하게 된다. 추상 기계가 오늘날 현실을 통제하는 구체적 힘이기 때.. -
방화주의 리얼리즘에 관하여 서문 2025.09.12 본문은 전시 《방화주의 리얼리즘 Pyro-Politics Realisim》의 서문과 발문의 합본이다. 《방화주의 리얼리즘 Pyro-Politics Realisim》2025. 9. 6. ~ 2025. 9. 20 (월, 화 휴관)13:00~19:00HH(서울 구로구 신도림로15가길 19 /19, Sindorim-ro 15-ga-gil, Guro-gu, Seoul)안상범, 이지훈, 윤장호, 장영해, 최인영, 프리즌 브레이커큐레이터: 윤태균공간 디자인: 김예솔포스터 디자인: 남지윤설치: 김예솔, 김영호사진: 윤태균후원: 서울문화재단 파시즘의 귀환과 신반동주의는 언제나 어떤 미래가 이미 도착했다는 선언으로 시작된다. 시간은 더 이상 중립적 배경이 아니다. 알고리즘으로 가속된 지구적 생산·소비 사슬 속에서 권력은 .. -
[번역] 마이크 페피 - 동시대 미술의 두 가지 허식 (Contemporary Art’s Twin Follies) 번역 2025.09.11 원문: https://spikeartmagazine.com/articles/contemporary-arts-twin-follies By Mike Pepi4 September 2024 비엔나 외곽, 합스부르크가(House of Habsburg)의 여름 궁전이었던 쇤브룬 궁전(Schloss Schönbrunn)의 광대한 정원에는 로마의 폐허가 있다. 방문객 지도에서 이를 보자마자 흥미가 동해 정원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고전적 요소는 모두 갖춰져 있었다. 박공(pediment)과 프리즈(frieze)가 부서진 대리석 덩어리들은 진짜처럼 보였고, 배치와 스케일도 정확했다. 심지어 영겁의 홍수에 잠긴 듯 약간 가라앉아, 영원한 도시의 일부인 양 꾸며져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것이 실제 폐허라기엔 어딘가 지나.. -
디오니소스적 퓨쳐리즘(Dionysian Futurism) Ver. 2 비평 2025.08.04 * 본문은 2025년 BEEP FEST에 전시되었음. (아래 참조)* 2025년 8월 3일 2차 수정됨.BEEP3: 📂≪Mutable Library≫BEEP3는 텍스트, 라이브 시리즈, 파티를 통해 2020년 이후 국내 전자음악의 흐름과 양상 및 흥미로운 지점을 탐구, 이를 묶어내려는 시도입니다.그 첫장을 여는 전시 ≪Mutable Library≫는, 리딩 룸의 형태를 빌려 전자음악을 둘러싼 사유들을 수집하고 목록화합니다.전시 공간에서는 8편의 투고문과 2편의 번역문, 50여 권의 국내·외 전자음악 관련 도서들을 편히 앉아 감상할 수 있습니다.📅전시 기간 Date and Time2025.5.13(화) ~ 2025.5.18(일) 11:00~19:00 / *5.17(토) 단축운영 - 14:00~16:00.. -
피에르 위그 《리미널》 REVIEW: 외상과 역치의 (역)현실에서 비평 2025.08.02 본 리뷰는 퍼블릭아트 2025년 8월호에 게재되었음. Issue 227, Aug 2025퍼블릭아트 2025년 8월호 Contents 028 Editorial 불안_정일주 030 Art Log 두번째 삶 2025 ACC 포커스: 료지 이케다 시야오 왕_날개 없는 그림자 백남준의 도시: 태양에 녹아드는 바다 김남두_언더www.artinpost.co.kr Leeum Museum of Art리움미술관 홈페이지입니다.www.leeumhoam.org 피에르 위그: 리미널외상과 역치의 (역)현실에서윤태균(독립 큐레이터) 테크놀로지와 오컬트(occult)를 함께 사유할 수 있을까? 전시 《피에르 위그: 리미널》은 이 두 영역을 한 시공간에 중첩한다는 점에서 위화감을 갖는다. 전시에서 작품을 정면으로 마주.. -
[번역] 제로 가속주의 지침서 (Z/Acc Primer) 번역 2025.07.23 Posted on 11/01/2019 (11/01/2019) by metanomad *원문 웹은 삭제되었으며, 아래의 링크에 본문이 아카이브 되어 있음.https://web.archive.org/web/20220705040103/https://www.meta-nomad.net/z-acc-primer/ 메타노마드(metanomad) - Z/Acc 지침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 사회적 염세주의의 초거대괴수(megalodon)를. 글쎄, 일단 우리가 Z/Acc와 관련하여 갖고 있는 단 하나의 단서를 보자. 바로 이 트윗이다:R/Acc: 산업 잉여분의 점점 더 많은 비율이 생물-사회적 퇴화를 은폐하는 작업에 흡수되고 있다.Z/Acc: 곧 100%를 초과할 것.U/Acc: 아 제발 좀.L/Acc: 저기 다.. -
김다슬 개인전 《Deep DOF》 서문 서문 2025.07.01 가끔 컴퓨터가 되는 꿈을 꾸곤 한다. 그 꿈은 너무나 생생해서 컴퓨터가 인간이 되는 꿈을 꾼 건지 착각할 정도이다. 그러나 분명히 인간은 컴퓨터가 되는 꿈을 꾸지만 그건 예지몽이며, 컴퓨터 또한 인간이 되는 꿈을 꾼다. (혹은 연산한다.) 인간은 컴퓨터를 사용하며 그 작동 방식을 모방하고, 컴퓨터는 인간의 신경망을 모델로 삼으며 더 정교하게 자신의 창조자의 복잡계를 모방해 간다. 만약 우리의 의식이, 그리고 인간의 실체가 세상이 물질과 정보가 뒤얽힌 인포스피어(infosphere)에 진입했다면, 컴퓨터과학자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의 말처럼 인간 또한 정보의 혼돈계적 패턴의 일종일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 또한 정보의 패턴이다. 그렇다면 지능(intelligence)과 영혼(spirit)의 .. -
[번역] 다니엘 바우만(Daniel Baumann) - 큐레이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What Happened to the Curator? 번역 2025.06.29 왜 수많은 큐레이터들이 예술과 직업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가 – 쿤스트할레 취리히 전 관장의 고백 원문: 《Spike》 Magazine 제80호 – "The State of the Arts" 다니엘 바우만(Daniel Baumann)은 예술사학자이며,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쿤스트할레 취리히의 관장으로 재임했다. 현재 그는 바젤에 거주 중이다.Daniel Baumann (전 Kunsthalle Zürich 관장)2024년 초, 쿤스트할레 취리히(Kunsthalle Zürich)는 나의 관장직 사임을 공식 발표했다. 10년에 걸친 재임을 마친다는 결정은 순전히 나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으며, 나는 새로운 직책을 제안받은 것도 아니고, 앞으로의 계획이.. -
[번역] 벤자민 노이스(Benjamin Noys) - 비소외적 삶(Non-alienated Life) 번역 2025.06.25 이 발표문은 벤자민 노이스의 저서 『선한 삶을 상상하기(Envisioning the Good Life)』(2025)의 내용을 통해 비소외적 삶의 상상력을 탐구한다. 이 책은 소외가 환원 불가능한 현실이라는 통념에 반대하며, 소외는 식별 가능하며 집단적 변형과 투쟁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는 입장을 제시한다.원문: https://www.academia.edu/130047815/Non_alienated_Life『선한 삶을 상상하기(Envisioning the Good Life)』: https://edinburghuniversitypress.com/book-envisioning-the-good-life.html 비소외적 삶(Non-alienated Life)벤자민 노이스(Benjamin Noys)번역: 윤태균 .. -
[번역] 닉 랜드(Nick Land) - 사이버고딕(Cybergothic) 번역 2025.06.14 원문: Nick Land, “Cybergothic,” in Fanged Noumena: Collected Writings 1987~2007, eds. Robin Mackay and Ray Brassier (Falmouth: Urbanomic, 2011), pp. 351–363.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물러났고, 젠장, 완전히 사라져버렸으며, 상황을 감시하라고 경찰들만 남겨두었다.(아르토 Artaud)복구 유닛들이 작업을 마치면, 환자는 해동되고, 새로운 피가 그의 정맥에 주입된다. 마침내 그 대상은 일어나 걸을 것이다. 마치 현대판 예수처럼. 문자 그대로 육체의 부활이다—단, 그 모든 기적은 과학에 의해 수행된다는 점에서.(레지스 Regis)하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주체가 결코 죽음을 끝내지 않고.. -
김루이 개인전 《Pull the camera back more...Now it‘s near the retina.》 서문 서문 2025.06.07 영상을 만드는 일은 렌즈(Lens)를 세상에 들이 밀고 마구 휘젓는 일과도 같다. 렌즈를 자신의 눈으로 삼는 영상 제작자는 카메라의 렌즈 혹은 컴퓨터의 비전(vision)을 무기처럼 휘두른다. 그러나 렌즈가 그들의 눈이라면, 렌즈 또한 사람의 안구만큼 연약하기도 하다. 우리는 거울 없이 스스로를 볼 수 없기에 우리의 시야에서는 스스로가 숨겨져 있지만, 항상 자신 또한 타자에게 보여진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볼 수 없는 타자에게 시선을 내려 꽂듯이, 스스로를 볼 수 없는 우리 또한 타자의 시선에 의해 공격당한다. 이처럼 영상을 만드는 이는 자신의 어떤 신체 부위보다 가장 날카로우면서 연약한 신체를 위험한 사물들의 세계로 삽입한다. 따라서 렌즈의 시선은 보는 이의 권력을 실현하는 과정이자.. -
전시 《거인의 익사체》 서문 서문 2025.05.31 어느 날 해변에 떠밀려 온 거인의 시체는 곧바로 사람들에게 화제의 대상이 된다. 그 관심의 양상은 다양하다. 아이들은 시체의 둔덕을 놀이터로 사용하고, 거대한 몸뚱아리는 관광객들에게 사진의 배경이 되며, 눈알에 고인 물은 새들에게는 목욕할 수 있는 웅덩이를 제공한다. 그러나 어떤 관찰자에게, 규모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관찰자에게는 그 몸이 거쳐왔던 거대한 시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 숭고의 매개가 된다. 몸이라는 것. 그것은 죽음 후에도 거대하다.한 차례 사람들의 관심을 거친 거인의 시체는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장소가 되었다. 몸은 방치되었으며 서서히 부패해 간다. 그 관심은 서서히 사그라든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해변을 찾지 않고, 거대한 형체는 점점 무너져 간다. 거인의 살점은 바닷바람과 새들에 의해.. -
회로 전시: 감각 기계와 (비)정향적 재귀 비평 2025.04.15 사고실험1: 큐레토리얼 스펙큘레이션(speculation)1. 전시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해될 수 있다. 내부의 개별 작업이 그 전시로 하여금 설정된 내용을 향하도록 정향적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정향성(定向性)이란 무엇인가? 경향성과 마찬가지로 정향성은 내부의 다수성을 전제한다. 정향성은 진행하는 여러 벡터가 한 방향을 향해 중첩되는 성격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벡터는 독립된 그래프로 기능하지 않고 서로 함수로 얽혀 있다. 개별 작업은 주조된 형식-내용으로 고유한 맥락을 갖는데, 이 작업들이 한 전시의 시공간에 배치되었을 때에는 서로 형식과 내용의 진행 방향을 통제하고 제어한다. 혹은 형식과 내용의 특정 기능을 가속하기도 한다. 통제와 제어는 전방향으로 전진하는 형식-내용을 정돈된 방.. -
《소닉 크로노시스(Sonic Chronosis)》 큐레토리얼 노트 비평 2025.03.27 * 본문은 월간미술 2025년 4월 제483호 'Curators Voice'에 기고되었음.https://monthlyart.com/portfolio-item/curators-voice-critique-8/ 윤태균 (독립 큐레이터) 소닉(sonic)은 사운드(sound)의 물리적 속성을 일컫는다. 음파의 속도, 음파의 세기, 음파의 진동수(frequency)와 같이, 소닉은 방향과 힘을 가진 운동이다. 전시 《소닉 크로노시스(Sonic Chronosis)》가 사운드라는 익숙한 용어 대신 소닉을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오늘날 미술 전시에 심심지 않게 등장하는 사운드라는 미디엄(medium)의 재료적, 질료적 성격을 재고하기 위함이다. 또한 전시의 제목에서 소닉이 수식하는 크로노시스(C.. -
편집증과 큐레토리얼에 관한 에세이; 전시 《Paranoia》 서문 서문 2025.03.24 오늘날 현실-정치의 작동은 자신의 대리물인 이미지를 커널로 삼게 되었다. 국제적 금융과 전산망을 통해 펼쳐진 이미지 네트워크는 현실을 통제하고, 거대한 이미지 군집기계(swarmachine)의 자가 증강에 방해가 되는 현실을 학살한다. 전시 《Paranoia》는 이러한 이미지의 속성을 해부한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이었던 언어가, 이제는 이미지에 의해 그 스스로의 자가증강의 원료로 사용된다. 이미지는 환각(hallucination)을 통해 없는 실재를 창조하여 현실의 작동에 외삽한다. 주어 없는 그 음모는 성공적으로 우리의 일상에 안착했다. 우리가 사유한다고 할 때에, 그 사유는 이미 계획된 것이다. 그렇다면, 전용(detournément)할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 “이미지는 종말의 계시이자, 진화를 위한.. -
이지윤 개인전 《Room for Escape》: 판데모니엄(Pandemonium)의 삼위일체; 고통, 꿈, 시간 비평 2025.03.21 *본문은 이지윤 개인전 《Room for Escape》도록 에 기고되었음. 윤태균 (독립 큐레이터, 비평가) I. 상호운용성 반신(demigod)에는 알고리즘과 언어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이 요구된다.인간에게 언어와 서사를 부여하는 권한은 신에게 있었다. 창조의 권능으로서 언어는 신에게 부여받은 기능이다. “빛이 생겨라.”. 신적 영역으로서 물적 실재는 신의 언어로부터 잉태되었지만, 인간은 그 신적 영역을 자신의 언어로 호명하고 구획했다. 물적 실재를 현실이라는 환상으로 덮어씌우고 인간 언어의 영토로 만들기. 이것이 언어적 현실의 창조이다. 도구적 이성은 언어적 현실을 지속적으로 갱신하며 인간에게 창조자의 권능을 부여했다. 이 행성에서의 짧은 시간 동안 인류는 창조의 권능을 통해 생.. -
김영식 개인전 《검은 오류》: 정보(Data)의 재현에 관한 편집증적 물음 비평 2025.03.21 *본문은 2025 당진문화재단 '이 시대의 작가전' 김영식 개인전 《검은 오류》 도록에 실린 글.윤태균1.오늘날 별개의 분과로 여겨지는 두 문화, 기술적 문화와 심미적 문화는 본래 하나의 실천 영역에 속해 있었다. ‘테크네’(τέχνη, tékhnē)는 인류가 세계와 관계 맺는 이 창조적 실천의 영역을 총칭한다. 인류사를 관통하는 완강한 언어 구조, 즉 서구중심주의, 로고스중심주의, 신화, 전설, 가부장제, 젠더, 자본주의의 존속은 오랜 시간을 거치며 이 하나의 사유를 여러 갈래로 분리해 냈다. 과학, 수학, 공학은 경험주의적 기구를 통해 자본 창출의 수단이 되었고 예술, 공예, 장식은 신화의 영역에 잔존하며 자본 탕진의 수단이 되었다. 반 세기 전부터 이 두 문화를 통합하려는 시도는 두 영역에서 동시에.. -
[번역]육 후이(Yuk Hui) – 신반동주의의 재림에 관하여(On the Recurrence of Neoreactionaries) 번역 2025.02.08 원문: E-fulx issue #151, 2025년 2월.번역: 윤태균 2017년, 지금으로부터 거의 8년 전, 나는 e-flux 저널에 신반동주의자의 불행한 의식에 대하여라는 글을 썼다. 이 글에서 나는 세계화 과정과 관련하여 신반동주의자들의 부상을 분석하고자 했다.[1] 2017년은 어떤 이들에게는 좋은 시절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다. 이제 2024년 11월의 세계사적 미국 대통령 선거는 신반동주의자들과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고, 신반동주의의 중심 인물인 커티스 야빈(Curtis Yarvin)과 피터 틸(Peter Thiel)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통령 제이디 밴스(J.D. Vance)를 통해 그들을 백악관으로 들여보냈다.2017년 당시 신반동주의 이데올로.. -
코리움(Corium)과 신시사이저: 무기적 중추신경과 유기적 암석의 합성 비평 2024.12.31 본문은 세마 코랄(SeMA Coral)에 게재되었다. (아래 링크 참조)http://semacoral.org/cabinet/2024coral-critic-study-taegyunyoon 코리움(Corium)과 신시사이저: 무기적 중추신경과 유기적 암석의 합성 윤태균 코리움현실은 무수한 기호의 다이어그램으로 작동한다. 이 기호계는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영역에 속한 모든 것의 추상적 다이어그램을 일컫는다. 칸트적 이성의 설명에 기생하는 모든 관측된 구조들—디지털 금융 플랫폼, 변증법, 반도체 수출, 금리 인하, 노동과 생산, 전기차 설계, 세로토닌 재흡수, 법, 프로파일링, 미술사, 온갖 상징—과 우연한 심연들—양자적 미시 세계, 총기 난사, 집단 자살, 폭탄 테러, 자본주의의 에너지 흡수, 살인, 벤조.. -
유세은 개인전 《𝔽𝕝𝕚𝕔𝕜𝕖𝕣 𝕍𝕠𝕚𝕕》 서문 서문 2024.12.12 윤태균(큐레이터) -와 +의 교차. 0과 1의 연속적 맞닿음.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는 빛의 깜빡거림(flicker)은 착란을 유발한다. 망각에 대한 두려움이 이 착란의 기원이다. 빛과 빛 사이의 어둠, 그 공허의 지점은 의식의 연속성을 무너뜨리는 무저갱(abyss)이다. 이미지가 나타나는 그 빛의 순간은 언어로 포획할 수 있지만, 이미지가 사라지는 어둠의 순간은 감각 정보가 없는 무료한 지점이다. 따라서 뇌가 기억을 연속적인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면, 뇌는 의식 안에서 어둠을 메꾸거나 제거해야 한다. 기억의 연속, 즉 이야기가 개인 의식의 통일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점멸의 순간마다 망각이 발생한다면 의식은 수많은 이야기들로 쪼개져 한 명의 개체로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뇌는 막 소멸한 그 .. -
장시재 개인전 《𝚇𝚎𝚗𝚘𝚐𝚎𝚗𝚎𝚜𝚒𝚜》 서문 서문 2024.12.12 윤태균 (독립 큐레이터) 현실과 허구, 현실과 가상,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있는가? 우리가 지금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이 허구라면 믿을 수 있는가? 장담컨대, 환상에 거하는 자는 자신이 환상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만약 이곳이 허구의 환상이라면, 이 환상은 우주의 수많은 실재적 장치가 주조해 낸 정교한 세계일 것이다. 의미와 그 조합을 가능케 하는 언어 시스템, 우리의 삶과 일상에 가치를 부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해명 가능한 자연을 가능케 하는 실증적 과학 기구.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의지하는 이 언어적 장치들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세계의 감각적 ‘상’에 확신을 준다. 이 장치의 정교함은 이곳이 유일한 현실이라는 믿음을 우리 뇌의 깊은 회로에 이식한다. 자본주의가 무너지리라는 꿈.. -
[번역]좌도적 혁명적 악마학 선언문 번역 2024.11.13 Gruppo di nun, 윤태균 (역) Gruppo di Nun은 이성애 가부장적 교리에 대한 초자연적 저항의 형태를 조직하며, 우주의 엔트로피적 해체에 대한 비이원적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대안적 의식 마법을 추진하는 집단이다. 우파적 교리의 세계 악마적 의식에 맞서, 좌파 중의 좌파를 위한 초자연적 저항을 재활성화하고 우주의 엔트로피적 해체를 목표로 할 때가 왔다.우파의 길 교리는 서구의 모든 비의 전통을 아우르는 자아 신격화 이론이다. 비의 학설을 과학 이론에 비유한다면, 각 교리가 그 신조 주위에 공리와 연계를 기반으로 하는 현실 모델을 구축하여 특정 우주관이 스스로를 지지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한다고 상상할 수 있다. 물리학에서처럼, 모든 것을 설명하는 비의 이론은 존재하지 않으며, 각 비의 학.. -
[번역]비인간적 언어(Language Inhuman) 번역 2024.11.13 Vincent Garton, 윤태균 (역)Vincent Garton은 『Leviathan Rots』에서 시작해 『Machine Decision is Not Final』에 수록된 "Automaticity and the Mystery of State" 장을 예고하며, 리버럴리즘의 무혈한 내부로 깊이 파고들어 끝까지 탐구한다. 21세기 전환기에서 리버럴리즘은 거의 모든 곳에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반동적 사상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는 프랑스 혁명기의 혼란 속에서 구질서의 복원이 임박하게, 자연스럽게, 저항 없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는 완전히 창조적인 은밀한 힘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¹ 그는 역사가 필연적으로 정통성의 권리를 확립할 것이라고 기대했.. -
매체(Medium)의 이종발생(XenoGenesis): 박창서의 개념-형식 논리 비평 2024.10.30 *본 글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전속작가제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음. 윤태균1. 역사의 종언을 쉬이 선언할 수 있는 오늘날에, 역사화란 어떤 실천인가? 도대체 가능한 것이기는 한가? 미술사는 잔해인가 기원인가? 오늘날 미술이 미술로 호명(interpellation)되는 이유는, 그것이 스스로의 역사를 참조하고 복제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미술은 미술사의 끝자락에 자신을 계속해서 박아 넣음으로써 스스로가 미술로 호명될 수 있도록 한다. 적어도 이전까지, ‘새로운’ 미술은 기존의 미술사에 부합하거나, 반대하거나, 그 과정을 통해 합일됨으로써 이름을 얻었다; 변증법은 역사의 공리이다. 역사는 이성의 언어적 구조화로 작성된 지도이다. 전승으로서 기억의 축적, 그리고 기억의 소실로서 망각. 이 두 극단.. -
[번역] 에이미 아일랜드(Amy Ireland) - 포에메메논: 오컬트 테크놀로지로서 형식(The Poememenon: Form as Occult Technology) 번역 2024.10.13 포에메메논: 오컬트 테크놀로지로서 형식(The Poememenon: Form as Occult Technology)* 원문은 다음과 같다:Amy Ireland. ‘The Poememenon: Form as Occult Technology’. UFD 027. Urbanomics Documents. 2017.* 본 번역본은 팩션(faction)의 팩셔너리 텍스트(factionary text)에 기재되었음. https://factionseoul.com/6 역자: 윤태균 필자 소개:에이미 아일랜드(Amy Ireland)는 현재 영국에 거주 중인 이론가이자 실험 작가이다. 그녀의 연구는 근대성(modernity)에서의 행위 주체성(agency)과 기술에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테크노-물질주의적(tran.. -
[번역] 마야 크로닉 (Maya B. Kronic)- 젠더 합성(Gender Synthesis) 번역 2024.10.01 이 출판물은 비드스턴 천문대 예술 연구 센터(Bidston Observatory Artistic Research Centre)에서 2023년 10월 26일 SSTRAPP 행사 ‘Sonic Disruptions’에서 발표한 프레젠테이션을 바탕으로 제작된 진(zine)이다. 이 진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다룬다: 젠더는 어떻게 합성되는가? 소리 합성과 젠더 합성은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가? 나의 가상 신체(virtual body)는 어디에 있는가? 왜 모든 것이 알(egg)에 관한 것인가? 그리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이 진은 특정 시점의 기록이자, 내가 겪은 트랜스 경험과 에이미 아일랜드(Amy Ireland)와의 논의에서 발전된 아이디어들을 담고 있으며, 이후 우리의 저서 Cute Acce.. -
[번역] 로빈 맥케이(Robin Mackay) - 지구적 트라우마의 간략한 역사(A Brief History of Geotrauma) 번역 2024.09.27 *원문은 다음과 같다. Robin Mackay. 'A Brief History of Geotrauma'. "Leper Creativity: Cyclonopedia Symposium". ed. Ed Keller, Nicola Masciandaro, & Eugene Thacker (New York: puctum books) p. 173 ~ 180.로빈 맥케이(Robin Mackay) - 지구적 트라우마의 간략한 역사(A Brief History of Geotrauma) 번역: 윤태균 프로이트(Freud), 페렌치(Ferenczi), 러브크래프트(Lovecraft), 보드킨(Bodkin), 챌린저(Challenger), 케인(Cane), 바커(Barker), 랜드(Land), 파르사니(Parsani). 말.. -
[학위논문] 가속주의의 양태와 한국 동시대 예술에서의 경향 = The Mode of Accelerationism and its Tendency in Contemporary Korean Art 연구 2024.09.23 원문 다운로드: https://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81460ec93d0ee52cffe0bdc3ef48d419&keyword=%EC%9C%A4%ED%83%9C%EA%B7%A0 https://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control_no=81460ec93d0ee52cffe0bdc3ef48d419&keyword=%EC%9C%A4%ED%83%9C%EA%B7%A0&p_mat_type=be54d9b8bc7cdb09 www.riss.kr -
[번역] 유진 대커(Eugene Thacker)- 검은 무한성: 혹은, 석유의 인간 발견(BLACK INFINITY; OR, OIL DISCOVERS HUMANS) 번역 2024.09.10 *원문은 다음과 같다. Eugene Thacker. 'Black Infinity; Or, Oil Discovers Humans'. "Leper Creativity: Cyclonopedia Symposium". ed. Ed Keller, Nicola Masciandaro, & Eugene Thacker (New York: puctum books) p. 173 ~ 180. 유진 대커- 검은 무한성: 혹은, 석유의 인간 발견(Eugene Thacker - BLACK INFINITY; OR, OIL DISCOVERS HUMANS) 번역: 윤태균 1964년, 호러 및 판타지 작가 프리츠 라이버(Fritz Leiber)는 "블랙 곤돌리에(Black Gondolier)"라는 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이 이야기는 아.. -
첨단 미술: 역사, 시스템, 양식 비평 2024.06.30 윤태균*본문은 서울시립미술관 난지창작스튜디오 2023 오픈스튜디오 [레지던시X예술 제도X미술사] 토크 발제문으로 작성되었음. A. 역사 역사는 언어로 이룩해낸 물질적 성좌이다. 비연속적인 사건의 얽힘을 하나하나 풀어내거나 알렉산드로스처럼 얽힌 채로 절단하여, 인과를 가진 서사적 배열이 될 수 있도록 배치한다. 학제로서의 역사학이 이 배치를 위한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틀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배치는 무작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를 서술하는 자는 자신의 모든 정치적 교차 지점에 충실하다. 예컨대 전통적 역사는 민족-국가, 계급(왕족에서부터 부르주아까지), 가부장, 서구중심주의 등의 헤게모니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서술되었다. 현대 이후의 시간적 조건인 동시대에서는 기존의 역사가 서술한 사건을 다시 불연속적.. -
조각의 중력을 추적하기 위한 사변 비평 2023.12.28 *본 글은 일민미술관 프로그램 전시비평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음.https://ilmin.org/ima_on/2023imacritics1/윤태균1.감각의 수용 과정에서 주체와 대상이라는 이항 구조는 최근 물질에 관한 담론에서 논외가 되었다. 더욱이 이항 사이 무수한 내부 작용에 관한 관심에 의해 이항 자체가 해체되고 있다. 언어로 규정된 이항 이전 물질적 하부구조는 항 간의 관계가 아닌 항 없이 매개된 (비) 연속적 물질들의 회집이다. 삶을 지탱하던 언어 체계를 무너뜨리려는 이러한 철학적 작업은 예술과 언어에 관한 허무주의를 끌어내는 듯 보인다. 역사 서술 이래로 우리가 믿어왔던 것들이 인간 중심적 허위의 것, 진리가 아닌 것이라면 예술과 언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예술과 비평이 인간의 언어로 역사와 .. -
영역적 현실의 기호, 리얼리즘과 주체성- 전시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의 각주 비평 2023.12.28 영역적 현실의 기호, 리얼리즘과 주체성- 전시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의 각주*본 글은 일민미술관 프로그램 전시비평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음.https://ilmin.org/ima_on/2023imacritics1/윤태균1.리얼리즘은 구상(具象)인가, 물질적 전형(典型)의 재현인가? 리얼리즘은 객관적 세계를 감각적으로 모사하려는 자연주의와는 구분된다. 리얼리즘과 자연주의는 서로 다른 항에 있는 개념이기보다는, 해석의 과정에서 부여되는 양식의 분류이다. 자연주의라는 해석은 해당 작품이 객관적으로 감각되는 세계 자체를 재현한다는 주장인데, 이는 작가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는 ‘물러난 세계’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주의 (혹은 과학적 진술)는 작품을 제작한 작가의 주체성과 그 사이의..
-
오늘날 예술의 언어는 정치적 실천일 수 있을까? I- 상상과 책임에 관하여 비평 2023.12.04 윤태균 (독립 큐레이터)1.무력감이 팽배한 시기이다. 인종 청소와 전쟁으로 무수한 민간인이 학살당함에도 국가 간의 이권 다툼 아래서 세계는 침묵하고, 착취와 빈곤은 선진자본주의에서의 계급 구조 재편으로 그 형태를 달리하며 지속된다.* 조건들- 사이버네틱스 담론은 인간의 고유함을 해체하여 인간이 역사적으로 거주했던 ‘물질 이상’의 영역에서 끌어내렸다.- 예술은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를 통과하며 가능한, 그리고 요구되는 정치적 실천의 양태를 재편했고 도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술적 편집 가능성의 시대는 다시 예술의 지위 재편을 요구한다.- 포스트프로덕션(Postproduction)과 페스티시(Pastiche)가 현대 미술의 일반적 방법론으로 수용되며 예술의 구조적 토대 가문화 일반의 방식에 가까워짐에도..
-
우연의 긍정, 의도의 무용함 – 최원서 개인전 《생동》을 마주하며 비평 2023.11.27 *본 글은 최원서 개인전 《생동》 도록에 수록됨윤태균 (독립 큐레이터)조형 작업은 비평과 마찬가지로 지도 그리기의 과정이다. 작가는 자신이 뿌리 내린 현실을 특수한 지표로 재단한다. 이 지표는 지극히 언어적인데, 인과를 확정할 수 없는 세계에 선을 그어 경계를 두고 구역을 나누기 때문이다. 또한 지도 제작의 방법론은 고대부터 축적된 지도 제작 관습을 따라야 하며 통용되는 행정구역을 지도에 반영한다. 지도는 길잡이가 되어야 하기에 모두가 참조할 수 있어야 하는 기호 체계를 가져야 한다. 그렇기에 지도는 지리의 자연적 재현이자 지리를 정치적으로 구획 지어야 하는 지정학적 행위이다. 물론 앞선 내용에서 말한 ‘지도 그리기’란 예술과 비평의 역할을 지도 제작의 과정과 역할에 대입한 환유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
-
문화 긴축의 시대, 대항적 지표 세우기 비평 2023.09.13 문화 긴축의 시대, 대항적 지표 세우기 윤태균 1.예술이 체계를 갖고 생산되기 위해서는 상응하는 복합적 사회 자본이 필요하다. 창작과 향유를 교육할 수 있는 기관, 예술 활동 현황이 상호 교환되는 잡지, 소셜 미디어, 저널 등의 이미지 네트워크, 담론을 실어 나르는 학계, 문화 소비와 재생산의 조건이 되는 시장. 그러나 예술이 생산되는 물리적 조건은 여전히 공간이다. 공간은 문화예술 시스템의 주요한 인터페이스이다. 작업실과 스튜디오는 생산의 기지이며 전시 공간, 공연장, 서점은 개별 예술이 문화예술 네트워크에 기입되는 일차적 출력 지점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공간의 기능적 분류로는 오늘날 공간의 작동 방식을 규정하기 힘들다. 각 공간은 여러 역할이 중첩된 (혼종적 혹은 변종이 된) 거점이기 때문이다. ..
-
담론 네트워크의 금융화, 예술 노동의 우버화 비평 2023.05.17 1. 아래의 세 단락은 미술계의 구성과 할당된 역할에 관한 본원적 믿음을 기초로 한다.2. 생물의 기관(organ)들은 각자에게 할당된 역할을 수행한다. 마찬가지로 미술계의 관리자들, 예술가들, 애호가들, 유통망들과 같은 기관은 제도적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려 애쓴다. (그러나 이 구조는 각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수행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믿음으로 지속된다.) 통상 미술계는 이 기관들의 총합으로 여겨지곤 하는데, 사실 기관들의 총합은 미술계보다 작은 단위이다. 미술계는 모호한 단위로서 하나의 개체로 정의되지 않는 희뿌연 덩어리이다. 따라서 미술계는 그 바깥과의 명확한 경계를 갖지 않는다. 미술계에서의 내부 작용은 얽힌 모든 것을 내재면으로 포섭하여 발생한다. 말하자면, 개체가 뿌리내린 토양과 환.. -
소넌티안, 환대의 번역자들 [고휘 작가 ZER01NE 프로젝트] 비평 2022.10.27 소넌티안, 환대의 번역자들 윤태균(큐레이터, 비평가) 소넌티안(Sonantian)은 자신이 서 있는 장소의 조건들-바람, 온도, 습도, 먼지, 소리-을 내부의 자율적 알고리즘을 거쳐 소리로 변환해낸다. 이 소리들은 실시간으로 화면 앞의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기계-생명체로서 소넌티안이 풀과 나무로 가득한 장소에 위치해 있는 풍경은 무척이나 생소하다. 하지만 이 생소함은 우리의 개념 안에서만 생소하다. 소넌티안은 자신 옆의 식물들과 비등하게 해당 장소에 조화롭게 위치해 있으며 인간이 해당 장소를 감각하고 설명하는 것 보다 더 효과적으로, 직관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전달해낸다. 도처에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는 기계가 산재하는 오늘, 다시금 인간성이 무엇인지 되묻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할 수도 있다. 더욱이 소비.. -
위반과 상상, 음모론과 픽션: <발사 후 망각>의 조건 비평 2022.09.20 위반과 상상, 음모론과 픽션: 발사 후 망각>의 조건 윤태균 (큐레이터 / 비평가)1. 지난 2년간의 펜데믹이 야기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분야는 다름아닌 정치와 담론의 현장이다. 지난 21세기 초반의 격정적 체제 변환 속에서 COVID-19 바이러스는 이 격류를 가속(accelerate)했다. 2008년 이후 제동 없이 질주하던 금융 경제의 세계화는 지구 전역의 국가들을 세계 시장 경제의 부품 생산 공장으로 만들었다. 공산품, 연료, 자원과 더불어 자원까지도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금융 거래는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 기후 위기와 재난까지도 화폐 가치의 등락으로 물화한다. 이제 지구의 국가들은 서로에게 빠짐없이 관계하는 연쇄적 공동체가 되었다. 이 새로운 질서는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공화.. -
파라노말 오페라: 서막 / 시청각적 서문을 위함 (video) 비평 2022.09.19
-
파라노말 오페라: 서막 / 시청각적 서문을 위함 (Script) 서문 2022.07.24 파라노말 오페라- 서막Paranormal Opera2022 제작: 윤태균 (기획/비평) 유령과 환영예술은 항상 유령이었다. 이 유령은 망각되어 현재와 단절된 시간들, 경험할 수 없는 공간에 잠재하는 것들을, 자신의 환영으로 암시한다. 유령은 단절된 시공간을 지금 여기와 매개함과 동시에 그것을 감각적인 서사로 통합하는 환영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유령으로서, 예술은 이 강력한 영매 과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작품은 스스로가 가진 조형의 환영성으로 자신의 서사적 맥락을 암시한다. 작품이 제작된 시공간으로의 사유 통로를 ‘서사 요소들의 힘과 관계들’로 드러내 보인다. 유령은 우리가 내재적으로 함께 존재하는, 그리고 포착하는 현실의 환영적 알레고리인 것이다.이 유령들은 결코 세계의 단순한 모사가 아니다. 우리와.. -
피상성, 기호, 이미지 - [윤태균, 유아연, 조아란] 비평 2022.05.21 1. 윤태균: 현재 이미지들이 계열화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이미지를 표면적으로 배열된 형태에서 벗어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이미지는 시각적 생성 과정과 표상 방식에서부터 모두 다른 맥락에 위치하지만,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이미지는 모두 노동과 자본이라는 현실에 밀착되어 있잖아요? 굳이 이미지의 특정 종류와 분야를 완벽하게 구분 지을 필요는 없지만, 시스템 안에서 이미지들이 어떠한 형태로 유통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아란: 그럼 이미지라는 단어 말고 기호라고 해도 통하는 의미인가요? 윤태균: 그 기호적 이미지가 맞습니다. 조아란: 좀 더 넓고 느슨한 의미의 이미지를 말하는 거군요, 단순히 가시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들을 넘어서요. 윤태균: 네, 좀.. -
침투 경로: 서사 해석자를 위한 기록 연구 2022.02.21 침투 경로: 서사 해석자를 위한 기록 *본문은 『침투 경로: 서사 해석자를 위한 기록』(팩션, 2022)에 수록되었음. 윤태균 1. 욕망은 물질 재현의 경로를 설정하고, 물질은 욕망의 방향을 설정한다. 1-1. 본 글에 등장하는 실재, 현실, 자연과 같은 구획들은 선험적이고 고정적인 영역의 개념이 아니다. 인식적 지도그리기를 통해 명명된, 존재와 생성의 장에 매겨진 행정구역이다. 2.서사는 시간 지평에서 변화하며 한 데 나열되는 기호들의 연계이다. 폴 리쾨르(Paul Ricoeur)는 인간의 시간 경험이 서사를 통해서 이해된다고 말한다. 추상적이고 객관적인 시간은 직접적으로 경험될 수 없지만, 인간의 시간은 해석된 시간이며 이야기로 구성된 시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의식이 서술하는 시간적 기록들.. -
아카이브된 미래, 추적 가능한 출처들 [아포칼립스 모으기] 비평 2021.07.23 아카이브된 미래, 추적 가능한 출처들 *본문은 전시> 도록에 게재되었음.2021년 7월 22일 - 2021년 8월 5일 갤러리 175유지원, 김연재 윤태균 (비평) 1. 아카이브는 다른 시공간을 지금의 역사로 포섭하려는 강박이다. 수집된 것을 감각하고 독해할 때에 수집된 것이 본래 속해있던 바깥의 시공간은 비로소 인식론적 시공간과 맺어진다. 이 말은 또한, 수집된 것으로서 아카이브는 항상 자신의 출처에 대한 지향이라는 것이다. 2. 망각과 죽음 충동은 현재를 과거와 단절시킨다. 데리다도 말하듯, 아카이브를 향한 열망은 망각에 대한 공포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아카이빙을 통해 실재로서의 과거를 재현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쉽게 추측할 수 있듯, 아카이브는 과거 혹은 기억 그 자체가 아니다. 데리다는 아.. -
아카이브 아트 매뉴얼: 과거를 좀비로 만들기 비평 2021.03.29 *본 글은 2021 서울문화재단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진행된 [아고라: 서교크리틱스] 워크숍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윤태균 0.이 글은 아카이브를 재차 설명하지 않으며 구성적 아카이브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1.아카이브는 향수(鄕愁)가 아니며 도래하는 것에 대한 희망도 아니다. 2. 할 포스터(Hal Poster)는 아카이브 아트를 설명하는 매혹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포스터에게 아카이브는 실패한 관계의 대체이자 금지된 것의 회복이다. 아카이브는 서사와 담론을 재구성하고 장소(Ort)를 구성하기도 한다.[1] 포스터에게 이 장소는 상징계를 교란하고 상상적 유토피아를 미약하게나마 실현한다. 그러나 아카이브가 상상적인 과거를 지시하고 있더라도, 아카이브를 열람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현재적인 행위이다. 이 때 상상적..
-
¿ 새로운 카바레 볼테르 혹은 새로운 컨벤션 홀 ? 비평 2021.02.25 ¿ 새로운 카바레 볼테르 혹은 새로운 컨벤션 홀 ?윤태균1.늘 그래왔듯 무빙 이미지 작업에는 조각난 전자음들이 함께 재생된다. 나아가, 미술관은 이러한 음악들이 더 이상 시각 예술을 위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여기며, 할당된 공간을 점거할 수 있는 또다른 예술 형식으로 전시한다. 예술가들은 사운드를 전시장에서 우두커니 바라볼 수 있는 무형의 오브제로 출품한다. 알다시피, 이러한 전략은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예견되어 왔다. 다다(Dada)를 거쳐 플럭서스(Fluxus)까지, 미술과 음악은 모두 그 전통적 제도 공간들을 벗어나 다양한 가지로 뻗어 나갔다.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의 소음 기계와 존 케이지(John Cage)의 퍼포먼스는 적어도 음악을 콘서트 홀에서 탈출시켰다는 공로를 가지며, ‘.. -
오디오 비주얼: 환각과 팍투라 비평 2020.11.30 오디오 비주얼: 환각과 팍투라윤태균 1. 리얼 타임 아트(Real-time Arts)는 투입(input)과 산출(output)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일종의 인터페이스(interface)로 기능한다. 2. 리얼 타임은 고속 컴퓨팅에 기반한다. 즉 정보의 투입은 고속으로 처리되어 ‘실시간으로’ 산출된다. 물론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과 같은 현상이 아니라면, 투입과 산출에 걸리는 시간은 0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인터페이스를 마주하는 공간에서 무언가를 투입하고, 우리가 그 장소를 떠나기 전까지 알고리즘을 거친 정보를 산출하는 것이다. 3. 리얼타임 오디오 비주얼에서는 오디오의 생성, 오디오에 대한 비주얼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미리 설정된 오디오, 즉흥적인 코딩(co.. -
디지털 안개 위의 방랑자 : 시리얼타임즈 <<우리는 디지털을 모르고 디지털은 우리를 모른다>> 비평 2020.11.05 본문은 시리얼타임즈 기획전 >의 도록에 기고되었음 디지털 안개 위의 방랑자윤태균 1.우리는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의 정초에 다가가고자 한다. 인식이 어떠한 대상의 본성에 가깝게 다가갈수록, 우리는 그것을 알아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앎이란 것은 대상에 지향성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통속적으로 우리가 어떠한 것을 안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의 범주적 개념들과 후험적으로 축적된 유비적 지식을 되풀이할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징적 언어로 정의된 개념적 앎은 우리가 진정으로, 또 오인 없이 대상을 인식하는 데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완전한 앎은 가능한가? 아니, 단일한 총체로서 대상이란 가능한가? 대상과 서로 접합되어 끊임없이 연관되는 저 많은 다양체들을 모두 고려할 수 있는가?.. -
포스트모더니즘의 잔해들┃조형성과 텍스트 비평 2020.09.18 윤태균 1.조형성(formativeness)과 텍스트(text)는 발생론적 측면에서 불가분한 관계를 갖는다. 2.조형성과 텍스트의 관계를 설명하는 과거의 미학적 도식들 중 단계적 논의를 위해 살펴볼 만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질료(matter)와 형상(form) 개념이다. 예를 들어 책상이라는 실체(substance)는 책상이라는 개념적 형태, 즉 형상과 나무라는 질료로 구성된다. 이때 형상은 유비적 본질로서 질료가 최종적으로 환원되고자 하는 지점이다. 환원의 교착 지점이 되는 형상은, 질료를 통제하는 본질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초월적 대상성은 감각적 표상에서도 그것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가? 대상이 가지는 형상은, 적어도 감각론의 측면에서는 선험적인 것이 될 수 없다. 표.. -
우리는 디지털 양의 꿈을 꾸는가?: 펜데믹과 디지털 리터러시 그리고 웹 전시 비평 2020.08.01 윤태균 (예술학)(본문은 전시 CLICKSCROLLZOOM>>의 도록에 게시되었음 http://clickscrollzoom.com/) 1. 지금은 ‘코로나-이후’인가? 이전의 모더니즘은 스스로의 가치를 시간적이고 역사적인 것에 두었다. 모더니즘의 지향성은 과거에 대한 성찰이 아닌 미래와 예술에 있었다. 미래주의와 모더니즘에서 보아하듯, 미래는 모더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이 쫓아야 할 종착지였던 것이다.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와의 연계점을 찾는 모더니즘의 시도들은 자신의 시간을 곧 서술될 역사의 한 부분에 배치하고자 했다. 즉 모더니즘이 구축해온 고유한 지향성들은 그들의 현재를 어떠한 총체로서의 역사에 통합하려는 시도였다. 끊어지지 않고 끝에서 끝으로 이어지는 쇠사슬과 같이, 모더니즘이 기획한 역사는 변증.. -
새로운 비평을 위한 몇가지 서술들 - 혹은 비평 형식의 분석 비평 2020.06.14 윤태균1.혹자가 비평의 위기를 말할 때 나는 비평의 해체를 제안한다.2.비평의 위기라는, 다소 긴박해 보이는 이 상황은 지난 수년간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이것은 비평만의 위기라기 보다는 비평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 조건의 위기이다. 이제는 너무나도 진부해진 이 위기라는 상황에는, 당연하게도 미술계 내부의 제도적인 측면, 미술 경험방식의 변화, 대중의 비평 수용 등의 오래된 논의들이 따라붙는다. 되풀이되는 이러한 논의들에서 비평가들은 비평의 독자성으로 그것을 정당화했다. 비평의 독자성이란 무엇인가. 논문, 저널리즘, 애호가의 에세이와 사변적 글쓰기처럼 다른 형식의 ‘글쓰기’와는 차별화되는, 차이로서 형성된 비평의 범주 형성은 비평을 특수한 조건 하에 두며, 가치라는 목적론의 환상에서 비평행위는 마땅히 그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