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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장시재 개인전 《𝚇𝚎𝚗𝚘𝚐𝚎𝚗𝚎𝚜𝚒𝚜》 서문

윤태균 (독립 큐레이터)

 

 현실과 허구, 현실과 가상,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있는가? 우리가 지금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이 허구라면 믿을 수 있는가? 장담컨대, 환상에 거하는 자는 자신이 환상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만약 이곳이 허구의 환상이라면, 이 환상은 우주의 수많은 실재적 장치가 주조해 낸 정교한 세계일 것이다. 의미와 그 조합을 가능케 하는 언어 시스템, 우리의 삶과 일상에 가치를 부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해명 가능한 자연을 가능케 하는 실증적 과학 기구. 우리가 ()의식적으로 의지하는 이 언어적 장치들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세계의 감각적에 확신을 준다. 이 장치의 정교함은 이곳이 유일한 현실이라는 믿음을 우리 뇌의 깊은 회로에 이식한다. 자본주의가 무너지리라는 꿈을 꾸어본 적이 있는가? 지구가 큐브 모양이라 믿어본 적이 있는가? 오늘날의 자본주의적, 과학적, 실증적 기구는 자신들이 주조한 허구를 유일한 현실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환상 제조 장치의 자가발전. 우리의 물질적 신체가 거주하는 곳은 명백한 실재이지만, 우리의 의식이 거주하는 곳은 불안한 허구이다.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의 말처럼, “예술과 정치 사이의 관계는 허구에서 현실로 가는 통로가 아니라 허구를 만드는 두 가지 방식 사이의 관계이다. 예술은 환상 속에 환상을 만들고, 허구 속에 허구를 만든다. 그러나 예술이 이 단단한 현실을 파괴하고 붕괴시키지는 않는다. 언어적 자아로서 의식이 실재, 그러니까 죽음으로서 심연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세계의 미래에 조금의 희망이라도 가지는 예술은 현실 시스템의 파괴나 붕괴를 지향하기보다는, 백도어(backdoor)를 생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현실의 언어적 감각이 변증법 없이 접합되어 탄생한 기괴한 이종으로서 예술. 이 예술이 다른 현실, 즉 우리가 대항적이거나 대안적이라 말할 수 있는 도래하지 않을 환상적 미래를 이곳에 소환해 낸다. 지금의 환상에서 이종을 발생시켜 우리가기괴하다고생각하는 엇나간 미래를 소환하는 것이다. 전에 보지 못한 낯선 이종과의 조우는 우리를 다른 현실로 잡아챈다.

 

 장시재의 조각 신체는 평행한 허구와의 웜 홀(worm hole)-백도어이다. 기능적인 산업적 재료가 서로 접합하여 서로를 수태하고 이식한 그 신체. 혹은 무기적 산업 재료 간 교배로 이종발생(Xenogenesis)한 유기적 신체. 장시재가 떨어진 환상과 환상 사이는 서로 다른 언어적 현실의 틈을 건널 수 있게끔 한다. 언어와 언어 사이의 텅 빈 그 공허를 말이다. 앞서 말했듯, 이 공허는 죽음으로서 심연이다. 우리는 이 기괴하게 접합한 조각 신체에서 견고히 규정된 언어 루프 바깥의 실재로 향한다. 언어의 공백에서 오는 공포 혹은 외상이 덮쳐온다: 우주와 우주를 가로지르는-분자와 분자를 가로지르는-입자와 입자의 강력을 가로지르는: 합성-수지, 합성-우주, 합성-신체. 이것이 장시재의 조각 신체를 특징짓는 구조이다. 공간 내에서 상하좌우로 작용하는 불안정한 중력과 의미의 안정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신경증(neurosis)적 통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정교한 허구는 우리의 탈출을 허하지 않는다. (그것이 탈출을 허하는 경우는, 죽음의 순간뿐이다..) 그러나 장시재의 조각 신체는 또 다른 허구와의 경계 너머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우리는 우리의 우주 경계를 결코 넘을 수 없지만, 적어도 수많은 평행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술의 혁명적 가능성은 이 백도어의 기능에서 출몰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오늘날의 예술가 (혹은 철학자)는 과학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가설을 세우고, 이를 정립하여(establish) 인류가 현실-허구를 확장하거나 또 다른 현실-허구로 진입하도록 돕는 것이다. 유일한 차이라면 과학은 실증을 통해, 예술은 사변과 상상을 통해 이 프런티어를 가속한다는 것이다. 이 공간은 장시재의 실험실이다.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과 경험적 실험(empirical experiment)이 동시에 일어나는. 플라스틱-살덩어리-고무호스-혈관-철제-뼈대가 뒤얽혀 여러 중력으로 향하는 장이다. 합성 생물학(Synthetic Biology), 유전자 편집(CRISPR-Cas9), 이종기관 이식(Xenotransplantation)! 이 실험에서 감각은 언어에 우선하고, 죽음은 삶보다 우선한다.

 

 

 

장시재 개인전 《𝚇𝚎𝚗𝚘𝚐𝚎𝚗𝚎𝚜𝚒𝚜》
2024. 11. 30. ~ 2024. 12. 15. (휴관 없음)
13:00 - 18:00
팩션 (서울특별시 삼선동 5가 4 지층)

기획: 윤태균
포스터 디자인: 곽세현
포스터 3D 그래픽: 장시재
사진: 송광찬
주최: 팩션
후원: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