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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마이크 페피 - 동시대 미술의 두 가지 허식 (Contemporary Art’s Twin Follies)

원문: https://spikeartmagazine.com/articles/contemporary-arts-twin-follies

 
By Mike Pepi
4 September 2024

 
비엔나 외곽, 합스부르크가(House of Habsburg)의 여름 궁전이었던 쇤브룬 궁전(Schloss Schönbrunn)의 광대한 정원에는 로마의 폐허가 있다. 방문객 지도에서 이를 보자마자 흥미가 동해 정원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고전적 요소는 모두 갖춰져 있었다. 박공(pediment)과 프리즈(frieze)가 부서진 대리석 덩어리들은 진짜처럼 보였고, 배치와 스케일도 정확했다. 심지어 영겁의 홍수에 잠긴 듯 약간 가라앉아, 영원한 도시의 일부인 양 꾸며져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것이 실제 폐허라기엔 어딘가 지나치게 정교하고 ‘너무 잘 꾸려진’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리석 더미는 연출된 장면처럼 보였고, 라운델(roundel)에 새겨진 얼굴들은 거의 현대적 양식을 띠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장소는 로마의 것도, 폐허도 아니었다. 그것은 건축적 장식물, 즉 폴리(folly)였고, 로마 제국의 계승을 자처했던 수많은 이들 중 한 명이 발주한 작품이었다. 1778년에 완공된 이 구조물은 요한 페르디난트 헤체노르프 폰 호엔베르크(Johann Ferdinand Hetzendorf von Hohenberg)가 서기 87년경의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 신전(Temple of Vespasian and Titus, c. 87 AD)을 느슨하게 본떠 만든 것이다. 이는 폼페이(Pompeii)와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 발굴 이후 18세기 유럽을 휩쓴 고대 폐허 열광의 전형적 산물이다.
합스부르크가도 그것이 진짜가 아님을 알았다. 하지만 몰입형 기념물로서 귀족들을 조상들의 세계로 데려다놓는 데는 충분했다. 흠 하나 없는 복제품으로는 같은 효과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쇠락’이 요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공하고자 했던 것은 ‘로마’라는 장소 그 자체가 아니라, 로마가 이미 퇴락해 버린 ‘시간’ 속에 서 있는 경험이었다. 한때는 새로웠던 폐허로서 이 구조물의 시간성은 태생부터 모호했고, 본디부터 자기 쇠퇴의 가능성을 불안해하던 관객에게 향수(nostalgia)를 공연하는 것이 그 의도였다. 18세기 관람자는 의식적인 호기심에 이끌려 이 장면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현대적’이라는 것은 바로 그러한 멜랑콜리(melancholy) 효과를 산출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이 작품 자체가 이제 200년을 훌쩍 넘겼다. 오늘의 시선으로 보면, 두 문명의 규범과 기술, 가치 체계와 삶의 관심사는 두 번이나 퇴락했다. 동시에 우리의 현대적 응시는 더 공들여 구성된 시각이기도 하다. 2024년의 우리는, 과거가 자기 과거를 바라보던 방식을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잔존하는 끌림이 있다. 아니었다면 내가 왜, 귀족적 빈 시민들처럼, 관광객들이 그 앞에서 감탄하는 모습을 보아야 했겠는가. 나는 놀란 마음으로 쇤브룬 공원(Schlosspark) 끝의 기차역으로 걸어 돌아오며 이 감정을 해석하려 애썼다. 모든 일이 묘하게 낯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쇤브룬의 폴리처럼, 우리 중 일부는 부러진 기둥과 누더기처럼 기워진 풍경들이 어딘가 너무 말끔히 정리되어 있음을 감지한다.
 
불현듯 깨달음이 왔다. 뉴욕에서 보는 전시 둘에 하나 꼴로, 멀리 떨어진 수많은 비엔날레(biennial)에서 오는 이미지와 리포트들마저, 나를 그 로만 루인으로 되돌려놓는다는 사실을. 오늘날 새로 나온 미술의 다수가 병든 듯 무기력하고 방향 감각을 잃었으며, 허약하고 순환적인 제스처들에 갇혀 있다. 거대 기획전이라 부르는 이른바 ‘동시대’ 미술의 장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일반적 권태—즉, 동시대미술이라는 역사적 국면이 사상적 종착점에 도달했고 더 이상 새로운 발상이 고갈되어, 그 빈자리를 오래된 형식과 수사, 주제를 재조립하는 행위가 대신하고 있다는 감각—를 떠올린다. 어느 특정 기관이나 작가 하나가 남보다 더 큰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회는 다른 전장으로 이동했는데, 동시대미술은 예전 싸움을 반복 재생하는 데 멈춰 서 있는 듯하다.
예술이 모든 정치적 위기에 응답할 필요는 없고, 물론 그것을 ‘해결’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예술은 애초에 일관된 표현일 필요조차 없으며, 우회적으로 강력할 수도 있다.  만약 ‘동시대성(contemporaneity)’이 아직 현재에 대한 효력을 지닌다면 관객을 새로운 배열 속에 위치시키는 일은 변이(variation)를 야기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그런데 제도들과 그에 협조하는 일부 예술가들은 위기의 국면에 있으며, 평균적인 위기 대응은 자족적인 태도로 낡은 전략들을 재탕하면서도 현재의 한계를 시험하길 회피하는 쪽으로 기운다. 요즘 미술 잡지에서 내가 가장 주의 깊게 읽는 것은 부고란이다. 최근에 만든 작품을 보는 경험 자체가, 노골적으로 포스트모더니스트(post-modernist) 컬렉션을 산책하는 느낌과 흡사해졌기 때문이다.
쇤브룬의 폴리처럼, 우리 중 일부는 부러진 기둥과 누더기 장면들이 어딘가 너무 말끔히 정리되어 있음을 감지한다. 더 나쁜 것은, 18세기의 관람객들이 로만 루인의 가짜성을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것처럼, 우리 역시 동시대미술의 탈진한 형식적 재주와 싱거운 역사적 상투에 무심한 체한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물리적 혹은 시각적 조합물 위에 얇게 덧입혀지는 약간의 아트 스피크(art-speak) 주문만으로도, 그것은 ‘지금-여기성’(nowness)을 부여받는다. 정치적 맥락이 ‘긴급’하거나 ‘변혁적’이며 ‘정체성’ 혹은 ‘다중의 위기’를 호명하기만 하면, 어떤 병치나 경계의 흐림, 60년 된 형식적 장난이라도 잠시 눈부신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제스처들의 본질은 폐허 관조의 의례 속에서 수행되는 멜랑콜리다.
 
 

마르셀 브로타스(Marcel Broodthaers), 《장식: 마르셀 브로타스에 의한 정복, 19세기(Décor: A Conquest by Marcel Broodthaers, XIXth Century)》, 1975/2014. 설치 전경, 애스펀 미술관(Aspen Art Museum), 2014. 사진: 토니 프리키를(Tony Prikryl)




이런 맥락에서 뉴욕 휘트니 비엔날레(Whitney Biennial)는 격년제로 열릴 때마다 미국 미술의 현황을 가늠하는 지표라기보다, 점점 소수의 전문가 집단만이 알아볼 수 있는 영리한 형식 조작의 전시장처럼 보인다. 그 내부자 집단은 사회정치적 체크리스트를 성실히 채워가는 광경에 고개를 끄덕일 뿐, 자신의 감수성이 침범당할 위협은 받지 않는다. 마치 자동 조종 장치(autopilot)처럼 작동하는 가운데, 사람들을 이 줄어드는 에코 챔버(echo chamber)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유일한 동력은 우리가 관심을 끊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어딘가 깊숙히 내재된 감각인 듯하다.
동시에 더 난감한 것은, 오늘날의 많은 미술이 내부 싸움과 학술적 의례에 갇힌 채 자신의 힘이 쇠했다는 가능성에 대해 철저히 둔감하다는 사실이다. 한때 동시대미술의 영향력은 형식적 논쟁과 정치적 논쟁 모두와 긴밀히 맞물려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논쟁들의 초점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동시대미술은 제자리걸음을 한다. 미국에서 보기에, 이 고집스러운 트레드밀 위의 움직임은 점점 더 해로운 종류의 향수, 즉 남북전쟁 재연극(Civil War Reenactments)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연극성은 급속히 성장하는 산업이다. 미국 전역의 광야에서, 어른들이 시대 복장을 하고 악명 높은 역사적 전투들을 소름끼칠 만큼 세세하게 재연한다. 실제 남북전쟁 전투들처럼, 피크닉을 즐기는 관객들이 이를 구경하러 몰려든다. 지지자들은 이를 역사 보존이라 주장하지만, 비평가들은 이를 르방시즘(revanchism)적 행위라고 부르며, 특히 남부 곳곳에서 BLM(Black Lives Matter) 운동 이후 남군 기념물이 대거 철거된 뒤 급증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남북전쟁 재연에 참여하는 일은 분명한 도발이다. 단지 향수를 소비하는 수준을 넘어, 그들은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정체성을 수행한다. 과거의 질서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노골적 발언이며 패배자 코스프레를 하더라도 역사가 잘못 궤도를 탄 지점에 대한 복수를 시도하는 장이다. 우습다고? 아마도. 인종차별적이라고? 거의 틀림없다. 하지만 내가 동시대미술 곳곳에서 목격하는 여러 재연(reenactment)들과 그리 다른가? 그다지.
 

마르셀 브로타스(Marcel Broodthaers), 《장식: 마르셀 브로타스에 의한 정복, 19세기(Décor: A Conquest by Marcel Broodthaers, XIXth Century)》, 1975/2014. 설치 전경, 애스펀 미술관(Aspen Art Museum), 2014. 사진: 토니 프리키를(Tony Prikryl)

 
 
경계는 섞어댄 끝에 피로해졌고, 우리의 정체성은 심문에 지쳐 해진 채이며, 저항의 양식들은 무의미한 반복으로 기력이 소진됐다.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사방에서 보인다. 우리의 ‘재연’은 좀 더 관념적이다. 후기 근대주의 미학 논쟁, 1960년대 제도투쟁, 1970–80년대 철학적 위기를 다시 무대화한다. 그러나 아직 도달하지 못한 승리를 향해 쓰는 수단들은 그다지 덜 허망하지 않다. 과연 식민주의, 제도적 인종주의, 가부장제라는 전체 프로젝트가 벽면 캡션을 조금 고쳐 단다거나, 가장 정교하게 큐레이팅된 단체전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심문’하는 것만으로 항복하겠는가?
원인은 새로울지 몰라도, 형식은 낡고 결핍되어 보이거나, 더 나쁘면 연극적이다. 전시 만들기에서 노골적 행동주의 주제가 넘쳐나는 현상—그 최근 사례로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의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본전시 〈Foreigners Everywhere〉를 들 수 있다—는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지속적 제도 개입은 결국 수많은 이주민들이 사회의 그늘로 내몰리거나, 강제 추방되거나, 이동 중 살해되는 현실과의 대화가 아니라, 과거 큐레이터들과의 대화를 닮아간다. 이른바 ‘큐레토리얼(the curatorial)’이라는 자기지시적 장은 허무의 담론이다. 경계는 섞기에 지쳐 있고, 정체성은 심문에 닳아 해졌으며, 저항의 양식들은 무의미한 반복으로 방전되었다. 제도 내부의 전쟁은 이미 끝났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해마다 의장을 차려입고, 유령들과 싸움을 계속한다.
이는 동시대 작가들이 오늘의 정치적 난제를 회피한다는 뜻이 아니다. 기후변화, 전면적 디지털 감시, 인종적·계급적 불평등은 오래도록 예술과 그 담론이 다룰 비옥한 토양일 것이다. 다만 제도들이 지금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들의 관객은 어떤 사안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공공’이 아니다. 관람자가 자신의 자기만족을 작품 속에서 확인하는 한, 게임은 이미 끝난다. 새로운 관련성의 경로를 북돋우는 대신, 제도들은 새로운 학구주의를 보상한다. 그 학구주의의 유일한 발명은 서로 다른 두 유형의 향수다. 하나는 위대한 문명의 쇠퇴를, 해독에 박사 학위가 필요한 누더기 영웅적 프리즈의 형태로 끌어다 쓰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대포를 끌어내고 역사적 전열을 다시 짜는 데 아직도 무슨 의미가 있다고 믿는 집단의 끓어오르는 정념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내가 쇤브룬 공원의 맑은 날 간신히 벗어나온 우로보로스(ouroboros)처럼 자기 꼬리를 물어 도는 순환이다. 둘러볼수록,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더 어려워진다.


마이크 페피(Mike Pepi)는 예술, 문화, 기술에 관해 글을 쓴다. 그의 신간 『플랫폼에 반대한다: 디지털 유토피아를 생존하기(Against Platforms: Surviving Digital Utopia)』는 2025년 1월 멜빌 하우스(Melville House)에서 출간되었다. 그는 뉴욕에 거주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