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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다니엘 바우만(Daniel Baumann) - 큐레이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What Happened to the Curator?

왜 수많은 큐레이터들이 예술과 직업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가 

– 쿤스트할레 취리히 전 관장의 고백

 

원문: 《Spike》 Magazine 제80호 – "The State of the Arts" 
다니엘 바우만(Daniel Baumann)은 예술사학자이며,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쿤스트할레 취리히의 관장으로 재임했다. 현재 그는 바젤에 거주 중이다.


Daniel Baumann (전 Kunsthalle Zürich 관장)


2024년 초, 쿤스트할레 취리히(Kunsthalle Zürich)는 나의 관장직 사임을 공식 발표했다. 10년에 걸친 재임을 마친다는 결정은 순전히 나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으며, 나는 새로운 직책을 제안받은 것도 아니고, 앞으로의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이후, 많은 큐레이터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들은 내 결정을 용기 있는 선택이라며 존경을 표했고, 가능하다면 자신들 또한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대부분은 40세 전후로, 경력상 가장 왕성하고 영향력 있는 시기에 있는 인물들이다. 예술계, 특히 제도권 미술기관은 이들이 축적한 지식과 열정, 그리고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들은 떠나고자 하는가?

그 첫 번째 이유는 큐레이터가 노출되어 있는 엄청난 기대치와, 그 기대를 우리 스스로가 인식하고 내면화한 데 있다. 문화 전반에서 시각예술만큼 비현실적인 요구에 직면한 분야는 거의 없다. 음악도, 연극도, 무용도, 문학도, 그리고 오페라도 이러한 수준의 요구를 받지는 않는다. 큐레이터에게는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주어진다. 우리는 일반 대중을 위한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하며, 동시에 아방가르드와 예술계 내부의 밀도 높은 담론 공동체를 위한 실험도 시도해야 한다. 우리는 시장, 갤러리, 콜렉터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이들은 종종 과대평가된 오피니언 리더로 간주되지만, 동시에 예산 확보에 있어 중요한 파트너이기도 하다.

또한 큐레이터는 체제 내부의 반체제자이기를 기대받는다. 제도 비판적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예술 기관의 ‘신뢰성’을 지속적으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는 도시 및 지역 공동체와도 연결되어야 한다. 오늘날 예술 기관은 지역 간 경쟁, 문화 관광 자원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는 지역적으로, 국가적으로, 국제적으로 다양한 세대와 계층—성인, 청소년, 아동은 물론—모든 소수자 집단과도 소통해야 한다. 포용적일 것을 요구받는 한편, 완전히 배타적인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하고, 이 모든 과제를 수많은 후원자, 기부자, 재단, 그리고 회원의 이해관계를 저글링하듯 균형 있게 조율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큐레이터는 이러한 상충하는 요구를 내면화한 팀을 이끌어야 하며, 내부로부터의 압박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 결과, 실험과 미래를 향한 비전이 움트기보다는, 조심스러운 균형을 추구하는 문화, 곧 ‘두려움의 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속에서 큐레이터는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겠다는 명분 아래 자의식 과잉의 폐쇄적 자기집단주의와 무기력한 이념적 경쟁에 빠져든다. 이런 상황에서 “신경쇠약 직전의 큐레이터들(Curators on the Verge of a Nervous Breakdown)”이 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두 번째 이유는 예술 제도와 그 서사—진보와 해방의 내러티브—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이다. 이 서사들이 제공하지 못한 약속들과, 때로는 괴물적 형태로 변질된 그 진화 과정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금 이 순간 전개되고 있는 것은 일종의 맹목적인 분노이며, 이는 점점 전체주의적 충동과 결합되며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전개되고 있다. 사고의 단락이 미덕처럼 여겨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문제적 제도들 위에 세워졌다는 이유로 의심받으며, 따라서 그것을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퍼진다. 그러나 내가 대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언제나 “민주주의가 너무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는 식이다. 물론 그 진단은 일정 부분 타당하지만, 그것은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

나는 민주주의와 그것이 낳은 제도들—미술관, 예술협회, 예술학교, 비엔날레 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 기관은, 그럴 만한 이유와 함께, 거대한 압박 속에 놓여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큐레이터들이 지금 자신이 봉사하고 있는 모델 자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느낀다. 그것이 만약 여전히 제도 안에서 일하고 있다면 말이다. (그나마도 박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는 예술 제도를 떠나, 이제는 더 이상 담론적 정당성 대신 자본 흐름만을 기준으로 정당화되는 미술 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미술 시장 역시 스스로의 담론적 정당성을 거의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에, 오늘날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한 장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부유층의 놀이터가 되어버렸고, 그들은 대체로 별다른 아이디어도 없다.

나는 이 ‘서사에 대한 근본적 의심’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흥미롭고도 소화하기 어려운 과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러한 서사 없이 사고할 수 없으며, 동시에 그것들에 내재된 이념성과 불의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란 본래 ‘보는 자’, ‘분석하는 자’, ‘토론하는 자’, ‘서사를 구성하는 자’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사유의 틀—즉, 내러티브—에 의존한다. 내 세대의 경우, 그러한 서사는 근대주의(교회와 봉건주의로부터의 해방), 이후에는 포스트모더니즘(확실성의 해체), 그리고 이어서 등장한 페미니즘적, 탈식민적 접근법이었다. 이들은 종종 서로 경쟁하며 공존했으나, 모두가 사유의 근본적 형식이자 (고통스러운) 계몽의 방식이며, 실천을 촉구하는 외침으로 여겨졌다.

오늘날, ‘서사’라는 개념 자체가 그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공격받고 있다. 이는 일종의 히스테리를 야기하고 있으며, 많은 문제들이 단지 해시태그나 유행어로만 표출되고 있다. 큐레이터들이 겪는 주제의 급속한 전환과 수많은 요구는 20세기 초의 ‘-이즘’ 시대를 연상케 한다. 그때처럼 확신이 해체되는 시대에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들이 진공 상태를 채우게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등장한 수많은 신(新)-이즘들이 이를 방증한다: 케어(Care), 셰어(Share), 젠더(Gender), 인종(Race), 에이블리즘(Ableism), 집단성(The Collective), 임금(Wage), 포용(Inclusion),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구상 회화(Figurative Painting),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토착성(Indigeneity)까지. 나는 이들 각각의 주제적 긴급성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큐레이터로서 우리는 이러한 이즘들에 따라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 모든 요구를 견디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들 큐레이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들은 탁월하고, 유쾌하며, 숨 가쁘게 위험을 감수하고,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이다. 우리의 예술 기관은 이들을 필요로 하고, 예술 또한 그렇다. 나 역시 이들이 있어 삶이 더욱 풍요로웠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대의 문화는 이제 괴물이 되어버렸고, 이를 먹이면 먹일수록 더욱 커진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요구에 응답하고, 모든 것을 가장 낮은 공통분모로 환원시키는 방식은 오히려 피상성만을 키우게 된다. 표면이 커질수록, 그 위에 더 많은 사람이 올라설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내용은 평평해진다. 예술은 점점 더 전통적이고 무기력한 공간이 되어간다.

우리가 지금 필요한 것은 ‘거절’이다. 비록 그것이 작은 걸음이라도 말이다. 아니라고 말할 용기, 실망시킬 자유가 필요하다. 당신의 다음 보도자료, e-flux 발표문, 혹은 평론은 이렇게 시작해도 좋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반갑습니다. 하지만 확신하건대, 이 글은 여러분을 실망시킬 것입니다.”


Photo: Gina Fo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