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의 흐름은 공기권을 따라 이동하며, 시야에 포착되지 않는 방식으로 공간을 재배열한다. 《괄호로 묶인 (곳)》은 이 비가시적 매질이 인간의 감각을 어떻게 다시 배치하는지 탐색한다. 무대 곳곳에는 소형 SW 송신기, SDR 수신 장치, 안테나를, 분절된 음향 패치가 자리하고, 전파 신호의 간헐적 도착과 미세한 지연이 표면 곳곳에 흔적을 남긴다. 일정한 주파수 위에 놓인 신체들은 잦은 미끄러짐과 작은 떨림을 경험하며, 의미화 직전에 머뭇거리는 음향의 껍질을 얇게 중첩한다.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는 공기적 매개층을 보이지 않는 거주 막으로 규정한다. 호흡과 기압, 습도, 정동의 무게가 얇게 얽힌 이 공간은 세계와 인간을 매개하며, 서로의 상태를 퍼지게 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전파는 이 매개층의 연장선에 놓인다. 청취는 공기적 조건이 감각을 미세하게 이동시키는 결과로 드러난다. 동일한 주파수에 접속한다는 사실은 사적 공간을 잠시 괄호로 묶어 느슨한 공동성을 가설한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동기화가 아니라, 서로의 반응이 불투명하게 흐르는 상태에 가깝다. 접속은 균질하게 수렴하지 않고, 감각의 초점은 개별적으로 흔들린다.
이 장소의 특유한 기류는 전파가 단순한 통신 수단으로 환원되지 않는 데서 기원한다. 전파는 기술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성층권 어딘가에서 편차를 키우고 시야 밖에서 통제의 단서를 새어나가게 만든다. 감지되지 않는 조정의 흔적은 음모론적 정동과 유사한 찜찜함을 남긴다. 신체, 음향, 장치, 루프의 배열은 완결된 메시지보다 접속 상태 자체에 주의를 기울인다. 공연은 이 괄호를 하나의 보호막처럼 제시하며, 반쯤 접속된 세계에서 발생하는 미약한 공동성을 천천히 노출한다. 의미는 이 괄호 내부에서 쉽게 응결되지 않는다. 대신, 지연된 반응과 조용한 떨림, 작은 편차의 잔여가 표면에 얇게 축적된다.
안민옥은 공간 곳곳에 배치한 단파 송신기 위로 트랙을 송출하고, 수신 장치를 조정해 소리를 미묘하게 비틀어본다. 동작은 간단한 체조 형태로 제시되지만, 몸의 각도 변화는 소리의 질감에 즉각적인 편차를 남긴다. 이 구조는 완전한 제어보다는 간섭의 감각에 가깝고, 반응은 언제나 예상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다. 간섭의 원인을 특정할 수 없는 순간이 반복되면서, 전파가 누군가에 의해 미세하게 조정되고 있다는 인상이 남는다. 각 동작은 이 지형을 천천히 스캔하는 절차로 작동한다. 이러한 불완전한 지연은 전파를 기술적 신호 이상의 것으로 느끼게 하며, 체조가 진행될수록 소리는 설명되지 않은 방향으로 굴절된다.
라디오 청취는 서로의 반응이 확인되지 않는 조건에서 거의 동시에 도달하는 음향이 얇은 층위로 나열되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전달되는 파형은 의미로 응결되기 이전의 표면에 머문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길게 흐르고, 급격한 분기나 서사적 굴곡 없이 작은 편차가 옅게 반복되는 양상을 보인다. 외부 비교 지점의 부재는 시간차와 새로움의 기준을 내부 감각에 의존하도록 둔다. 미래를 향한 전망적 긴장이 흐릿해질수록 현재는 얇은 단면을 여러 겹으로 접어 두는 듯한 압력을 품는다. 최보련은 이 조건을 잠금에 가까운 청취적 배치로 지칭하며 빠른 해석의 돌출보다는 미세한 편차의 지속에 주파수가 맞춰진 상태를 다룬다.
임희주는 단파 음향의 파편을 수집해, 세계가 개인의 감정적 스케일로 축소되는 순간을 청각적으로 구성한다. 무대에 배치된 장치들은 주변 전파 흐름의 작은 진폭을 실시간으로 반사하며, 소리는 잡음과 미세한 떨림을 남긴 채 갑작스런 침묵으로 끊어진다. 소리는 짧은 지연과 손실을 포함한 형태로 도달하며, 전달되지 않은 조각들이 내부 회로로 흡수된다. 서사는 확장된 관계망으로 이어지지 않고 좁은 구조로 접혀들며 내밀한 감정의 표면 위에서, 어쩌면 독선적으로 재배치된다.(セカイ系!) 반복적으로 포착되는 파편들은 오직 내부의 얇은 벽을 따라 조용히 되튈 뿐이다. 발화되지 않은 잔여는 작은 규모의 세계 안쪽에서 미세한, 그러나 강력한 공명으로 남는다.
다이애나밴드는 무대 위에서 하나의 덩어리로 결합된 다중 신체를 구성하고, 이를 전파가 제공하는 잡음, 반향, 왜곡과 함께 결합한다. 이 퍼포먼스는 명확한 언어 대신, 집단적 발성과 응답되지 않는 호소의 감정 구조를 탐색한다. 라디오는 매개 기술이기보다, 고립된 감정과 연결되지 못한 발화가 떠도는 장치로 등장한다. 신체는 서로 접촉하지 않으면서도 동일한 신호 속에 머물며, 단절과 공명을 동시에 드러낸다. 공연은 혼자의 상태가 병렬적으로 공존하는 순간이다.
날짜 | 2025년 11월 10일(월) , 11일(화)
시간 | 16:00~ *타임테이블* 확인 부탁드립니다.
장소 | 문래예술공장 2층 박스씨어터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경인로88길 5-4)
⁺₊⋅ॱ
기획 | 임희주
참여 | 다이애나밴드 (원정, 두호), 안민옥, 임희주, 최보련
텍스트 및 협력 | 윤태균
웹스트리밍 및 디자인 | 2bpencil
사운드 엔지니어 | 최미루
촬영 | 손주영, 2bpencil
진행도움 | 김승남, Ha Jason Sangho
후원 |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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