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해변에 떠밀려 온 거인의 시체는 곧바로 사람들에게 화제의 대상이 된다. 그 관심의 양상은 다양하다. 아이들은 시체의 둔덕을 놀이터로 사용하고, 거대한 몸뚱아리는 관광객들에게 사진의 배경이 되며, 눈알에 고인 물은 새들에게는 목욕할 수 있는 웅덩이를 제공한다. 그러나 어떤 관찰자에게, 규모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관찰자에게는 그 몸이 거쳐왔던 거대한 시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 숭고의 매개가 된다. 몸이라는 것. 그것은 죽음 후에도 거대하다.
한 차례 사람들의 관심을 거친 거인의 시체는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장소가 되었다. 몸은 방치되었으며 서서히 부패해 간다. 그 관심은 서서히 사그라든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해변을 찾지 않고, 거대한 형체는 점점 무너져 간다. 거인의 살점은 바닷바람과 새들에 의해 뜯겨 나가고, 부패한 냄새는 더 이상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다. 관광객들의 카메라는 더 이상 그 거대한 형상을 담지 않으며,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오직 유기물의 잔해와 흐릿한 이야기 뿐이다.
시간이 지나자 거인의 흔적은 점점 해변에서 사라져 간다. 그러나 그 흔적의 양상은 다양하다. 한때 웅장했던 육체의 일부는 뼈만 남아 표백된 유물처럼 모래 위에 드러나고, 일부는 파도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마을의 일부 주민들은 거인의 뼈를 기념품처럼 수집하기도 하고, 몇몇 조각은 이름 모를 창고나 박물관의 한 구석에 방치된다. 그리고 어떤 흔적은 기억 속에만 남는다. 한때 바다에서 떠밀려 온 거인의 시체를 보았던 이들은 그 거대함을 이야기하며, 그것이 존재했던 시간과 공간을 상상한다. 사라진 것은 몸이지만, 이야기는 남는다.
물질은 이야기를 만듦과 동시에 또 다른 세계를 매개한다. 재료, 형태, 기둥, 뼈대, 음각과 양각, 피부, 껍데기. 전시 《거인의 익사체》에서, 작가들은 거대한 이야기를 실은 몸을 떠민다. 작품의 뼈와 살은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가? 그 뼈와 살이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면 조형성과 텍스트의 일원적 관계는 존재론적으로 불가분할 것이다. 그 사체는 공간에 떠밀려와, 사람들 앞에 놓인다.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어떤 이야기가 남을 것인가? 조형은 이야기를 생산하지만, 그 이야기는 분해되며 빠르게 망각된다.
하지만 그 소멸의 과정 자체가 이야기가 됨으로써, 우리는 종종 거인이 부활하는 꿈을 꾼다. 거인이 마을을 성큼성큼 걸어다니며 자신의 신체 부위들을 회수하여 바다로 돌아가는 모습을…
《거인의 익사체》
2025년 5월 29일 ‒ 6월 29일
소현문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월드컵로357번길 11-20
12:00-19:00, 수요일 휴무
오프닝 리셉션: 2025년 5월 29일 17:00
류정하, 우수빈, 장시재, 맨디 리
기획 및 큐레이팅: 윤태균
주최: 소현문
주관: 윤태균, 백림기획, 마음랩
포스터 디자인: 윤태균
작품 운송: 킹콩익스프레스
사진 기록: 윤태균, 김해찬
전시 운영: 백필균, 석지윤, 이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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