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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경계의 양가성에 관하여: 주다은 개인전 《흩어진 기별》 리뷰

경계의 양가성에 관하여: 주다은 개인전 REVIEW

 

*본문은 주다은 개인전 《흩어진 기별》의 도록에 수록되었음.

 

윤태균(독립 큐레이터)

 

“과거가 접혀 현재의 뒤편에 들러붙는다”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1] 이 문장에는 분명 응답되어야 하지만 쉬이 생각되어 본 적 없는 질문이 전제되어 있다. 무엇이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나누는가? 물론 우리가 사용하는 과거와 현재라는 개념은 지극히 언어적으로 분할된, 시간의 표상이다. 과거와 현재는 정지한 시간이 아니다. 시간의 상대적인 영역으로서 끊임없이 위상을 바꾸는 계측 표지일 뿐이다. 우리는 시간의 위상에서 흐르며, 지나쳐간 영역을 과거로, 지나고 있는 영역을 현재로 칭한다. 과거는 떠나온 곳으로 여겨지며 현재는 거주하는 곳으로 여겨진다. 인지적 시간의 비가역성에 따라, 과거로의 항해는 불가할 것이다. 시간을, 그리고 시간을 통해 작동하는 세계를 정향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 비가역성에 의해 소외된다. 그래서 소외는 삶의 조건이기도 하다. 벤자민 노이스(Benjamin Noy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외는 세계의 구성요소이며, 따라서 우리는 세계로부터조차 소외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세계 자체가 소외이기 때문이다.”[2]

향수는 돌아갈 수 없음, 즉 처지에 의해 가로막힌 역행을 자각하며 발생한다. 따라서 과거를 회상하는 일은 늘 향수를 동반한다. 주다은의 개인전 《흩어진 기별》은 소외와 향수에 관한 작은 서사이다. 진술과 회고는 떠나온 시간과 장소를 되짚고 엮는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바로 마주할 수 있는 <가끔 기록이 최선이 되는 일들이 존재한다>에서, 만주에서 출생한 작가의 외할머니는 구술적 회고를 통해 삶의 경로에 있는 시공간의 궤적을 나열한다. 이 회고에는 강한 향수의 상념이 있다. 향수는 그리움을 조건으로 가지지 않는다. 향수는 삶을 오직 가역적으로만 가능케 하는 세계의 부조리를 자각함이다. 작업은 외할머니의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시각적 요소로 위성과 GPS 이미지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위성 이미지와 GPS 이미지는 ‘내가 지금 있지 않은 곳’을 파악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회고된 이야기를 구체화하기 위한 이미지의 도움은 ‘현재 그곳에 있지 않음’이라는 조건을 명확히 한다. 따라서 이야기는 스스로가 지시하는 그곳의 주위만을 떠돈다. 그렇게 잔존한, 소외된 증언의 떠돎만이 남는다. 작가는 이를 “흔적”이라 칭한다.[3]

그러나 우리가 흐름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해서 향수 또한 패배주의와 체념에 사로잡힌 상념인 것은 아니다. 이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소외와 고립은 다르다. 회고와 향수는, 지시하는 그 시공간으로의 강한 지향성을 갖는다. 이 지향성은 소외와 경계를 마주하고, 지금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욕망이다. 일종의 탈출술이다. 그러나 이 지향성이 과거를 향한다는 점에서 쉬이 반동(反動)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데, 이는 시간의 선형성을 전제하여 생기는 오류이다. 과거는 영영 떠나보낼 수 없다. 그것은 강한 지향성과 현재-과거를 잇는 수많은 기억과 향수로 이어진, 말 그대로 접혀서 현재의 뒤편에 들러붙은 전-현재이다. 과거는 현재와 포개지기도 하고 현재를 가리기도 한다. <가끔 기록이 최선이 되는 일들이 존재한다>의 지향성은 여전히 현재와 같은 위상에 있지만, 단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그 은밀한 타지(他地)를 향한다. 경계를 드러냄으로써 경계를 탈출하기. 같은 측면에서, 경계가 반드시 고립을 낳지는 않는다. 경계를 극복하기 위한 이동과 자체적 확장은 우리에게 또 다른, 그리고 더 먼 영토로의 전진적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경계의 이쪽과 저쪽이 각자 공유하는 이질적 경험과 이쪽과 저쪽이 모두 공유하는 집단적 경험은 각자의 삶을 규정한다. 경계는 소외를 통해, 각 구획에 속한 개인들의 개인적 삶을 가능케 한다. 그렇다면 개인적 삶을 위해서 반드시 경계를 수용해야 하는가? 이전 문단에서 언급했듯, 연속적 삶은 경계를 초과하는 지향성으로 가능하다. 경계의 유무가 아니라 경계의 넘나듦이 세계와 역사의 연속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피부로 경계지어진 각기 다른 몸을 공유하는 우리 개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집단과 공동체의 연속성은 타인으로의 지향성을 통해 달성된다. 이 지향성은 <가끔 기록이 최선이 되는 일들이 존재한다>에서는 목소리로, 그리고 <소리를 위한 소리>와 <없는 고향>에서는 음악으로 형식화된다. 아니, 애초에 음악이 지향성의 오래된 형식이기도 하다. 여기서 소리와 음악의 차이를 간단히 짚고 갈 필요가 있다. 소리는 세계를 구성하는 무수한 진동의 흐름으로서, 비(非)구획적이며 주변성과 우연성을 본성으로 한다. 그러나 음악은 이러한 소리를 특정한 질서와 규범, 리듬과 조화 속에 배열해내는 로고스적 형식이다. 말하자면 음악은 소리를 사회적으로 해석하고 기억하기 위한 집단적 문법이자, 고유한 감각적 기록 방식인 셈이다. 민속적 음악은 그 공동체가 세계를 파악하는 방식과 감정의 분포를 내면화하고, 특정한 시대와 장소의 정동적 구조를 간직한 채 전승된다. 음악은 소외를 낳는 경계의 표면을 스치고, 그것을 조직화하고, 정동을 언어화함으로써 기억을 한 몸의 차원을 넘어 집단적 신체로 이양한다. 연주와 악보, 즉 <소리를 위한 소리>와 <없는 고향>은 은밀한 타지인 외할머니의 과거를, 음악을 통해 감각과 집단적 기억의 층위로 인양한다. 그럼으로써 청자를 향하는 지향성은 경계를 초과한다. 청각적이고 개념적인 기억으로서 음악.

어쩌면 두 전시실(전시실 1, 전시실 2)의 경계를 잇는 긴 복도, 그리고 그 복도의 연속성을 은유하는 공 <웜홀을 흐르며>는 전시 전체의 구조를 ‘연결’로 정의하려는 작가의 장치이다. 전시실 2에 들어서면 경계의 시각적 기호로서 여러 도상이 놓여 있다. 특히 DMZ를 조각으로 형상화한 〈숨쉬는 허물〉은 이 전시가 놓인 장소성, 그러니까 평화문화진지가 지닌 군사적 지층과 맞물리며 더욱 중층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냉전기의 벙커 위에 자리한 전시공간은 이미 분단과 감시의 기억을 구조적인 결로 품고 있으며, 〈숨쉬는 허물〉은 이 역사적 경계를 더 이상 폐기된 잔해가 아닌, 여전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생체적 흔적으로 제시한다. 이는 경계가 결코 과거형으로 고착되지 않았음을 암시하며, 군사적 유제가 어떻게 현재의 일상 속에서 연속적으로 ‘호흡’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따라서 조각의 표면에 남은 균열과 박리는 단순한 물질적 질감이 아니라, 장소와 신체, 역사와 현재가 서로 맞닿아 생성하는 ‘살아있는 경계’를 시각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오늘이 흘러 어제를 만나면>의 시선이 출발하는 곳은 경계-벽의 안쪽이다. 보는 이는 벽의 틈으로 경계 너머 경계-벽을 본다. 작은 틈으로 너머를 본다는 것은 항상 욕망을 좇는 행위였다. 나를 들키지 않고 응시를 전유하려는 것인데, 당연히 이는 일방적이다. 이 글에서 욕망에 관해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경계 너머를 오로지 한 방향으로 들여다보고자 하는 이 시선이 지향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전의 두 영상에서 접근 불가능성과 향수로, 그러니까 “흔적”으로 나타났던 그 지향성이, 이제는 정말로 경계를 관통하는 시선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여기서 욕망의 화자는 작가의 외할머니가 아니라 작가로 전환된다. 세대의 문제인가, 장소의 문제인가? 경계의 삶은 작가에게 전이된다. 자신의 삶을 외할머니의 삶에 비추어 회고하는 과정을 내보이는 것이다. 작가는 서울과 베를린이라는 두 도시를 반복하여 이주한다. 그러나 결국 경계를 계속해서 넘나들고 회고하고 향수하는 이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경계 너머 경계가 있다는 무기력함이 아니다. 경계와 소외를 그 본성으로 가지는 세계에서, 늘 한계 너머를 욕망하고 지향할 수 있는 역량이자 희망이다. 주다은이 전시 《흩어진 기별》에서 외할머니의 삶을 통해 탐색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필연적으로 나아가야 할 경계 사이의, 그리고 경계 너머의 그 소외된 삶이다.



[1] 윤태균, 《방화주의 리얼리즘》 서문, 2025.

[2] Benjamin Noys, Non-alienated Life, 2025.

[3] 주다은의 작가노트에서 발췌.

 

 

[2025 신진미술인 지원 프로그램]
주다은 개인전 《흩어진 기별》
2025.09.09(화) - 2025.09.28(일)
평화문화진지 전시실1, 2 (도봉구 마들로 932)
10:00-20:00 휴관일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