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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아카이브 아트 매뉴얼: 과거를 좀비로 만들기

*본 글은 2021 서울문화재단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진행된 [아고라: 서교크리틱스] 워크숍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윤태균

 

0.

이 글은 아카이브를 재차 설명하지 않으며 구성적 아카이브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1.

아카이브는 향수(鄕愁)가 아니며 도래하는 것에 대한 희망도 아니다.

 

2.

할 포스터(Hal Poster)는 아카이브 아트를 설명하는 매혹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포스터에게 아카이브는 실패한 관계의 대체이자 금지된 것의 회복이다. 아카이브는 서사와 담론을 재구성하고 장소(Ort)를 구성하기도 한다.[1] 포스터에게 이 장소는 상징계를 교란하고 상상적 유토피아를 미약하게나마 실현한다. 그러나 아카이브가 상상적인 과거를 지시하고 있더라도, 아카이브를 열람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현재적인 행위이다. 이 때 상상적인 역사는 이질적이고, 이 이질적인 역사를 현재에 편입하려는 시도는 외상을 동반한다. 이때의 외상은 죽음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확장을 가능케 한다. 긍정적인 외상은 생산적 욕동을 가능케 하는 충격이기도 하다. 인식의 순간에 이와 같은 충격 효과가 생성되는 것은 명백히 아카이브의 구성에 의한 것이다. 우리가 매번 범속한 물건에서 그것의 위대한 역사를 유추하지 않듯, 아카이브는 단순한 수집과 무작위적 배치로 성취되지 않는다. 아카이빙은 지나온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구성하며, 우리는 이렇게 제시된 아카이브를 목격할 따름이다.

 

3.

지나온 것들을 다루는 아카이브는 그들을 사후적으로 재구성한다. 이러한 재구성은 수집, 분류, 편집, 배열 등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것은 일종의 비평 행위와 같다. 아카이브는 사후적 비평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예컨대 남화연이 《마음의 흐름》(아트선재센터, 2020)에서 구축한 아카이브는 정교한 비평이다. 남화연은 수집한 자료들을 배치할 뿐만 아니라, 이 파편적 자료들이 만들어내는 공백을 자신이 새롭게 집필한 서사로 메운다. 이 때 제시되는 최승희 안무가(1911-1969)의 기록된 역사는, 남화연이 그 역사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현재의 행위로 보충함으로써 더욱 불완전한 것으로 남는다. 불완전한 역사는 결국 유령(spirit)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 모호한 역사와 현재 사이의 수많은 물질적 얽힘을 끄집어내 하나의 내재면에 구성하는 것은, 과거를 좀비로 만든다. 이 좀비는 특정한 장소에 출몰하여 현재의 것들과 강력한 충돌을 일으킨다. 한 때 인간이었고 한 때 누군가의 가족이었던 좀비는, 살이 썩고 풍화되었지만 죽지 않고 같은 시간을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 구성적 아카이브로 다시 깨어난 역사도 그러하다. 남화연의 <마음의 흐름>(2020)에서 나타나는 과거와 현재, 자신과 최승희의 만남은 강렬한 시간적 몽타주 효과를 장치한다. 이 시간적 몽타주는 지금과 지금이 아닌 것, 그들을 충돌시켜 어떠한 적대를 만들어낸다. 과거와 현재는 같아질 수 없지만, 그들은 아카이브가 구성하는 장소에서 필연적으로 교차하는 것이다. 이 교차는 의도적인 비평의 효과이다. 또한 아카이브의 서사는 역사가 인간에서 좀비가 되기까지의 구체적인 이야기이다. 아카이브는 텍스트의 나열과 함께 조형적으로 혹은 서사적으로 그것을 공간 안에 재구성한다.

 

4.

아카이빙은 흩어져 있는 흔적들을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발견된 것들은 수집되고, 수집된 것들은 구성된다. 그리고 발견의 대상은 체계의 밖에 있는 타자의 역사이다. 우리가 구성하지 못했던, 역사적 관계들이 구성한 또 하나의 역사인 것이다. 즉 아카이브가 제시하는 새로운 계보는 구성된 타자의 이야기로서 지극히 역사적인 것이다.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와 같이, 아카이브는 수집하고 나열한다. 파운드 푸티지는 스스로가 지나온 궤적을 훑으며 기호적으로 제시한다. 아카이브된 것들은 기호적이고 자신이 거쳐왔던 역사의 모든 관계들을 포괄한다. 결국 아카이브의 임무는 기호들로 어떤 알레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민주주의의 봄》(아트선재센터, 2020)에서 보여지는 수집된 증언들과 흔적들, 이것은 절대 스스로를 완벽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공허한 울림을 기호로서 제시한다. 아감벤(Giorgio Agamben)의 말마따나, 참된 증언은 비언어적 공백으로 드러난다.[2] 아카이브의 구성은 역사적 관계들을 알레고리적으로 드러낼 뿐 그 자체로 역사가 될 수는 없다. 전시에서 보여지는 모든 기록물들. 사진, 영상, 인터뷰, 수집물그것들은 공인된 오브제들로서 제도적 공간 안에 안치된다. 그러나, 그것이 드러내는 역사적 관계들은 언제나 적대적이다. 아카이브가 보유하는 것은 증언의 암시일 뿐이며, 증언의 암시는 구성의 언어적 공백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아카이브는 어떤 국지적 역사의 완결(혹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출발점을 제공한다.

 

5.

수집된 것의 구성이 단순한 객체적 오브제가 아닌, 증언의 암시로서의 아카이브가 될 수 있는 기제는 그것이 경계를 설정하는 장치들을 갖기 때문이다. 수집된 것들에서 나타나는 증상들, 혹은 증상을 드러내는 기록물들이 아카이브에 지표적 속성을 가능케 한다.

 

6.

레디메이드의 시도는 시뮬라크르적 제품을 제도적 공간안에 끌어와 미술관의 벽에 균열을 낸다. 아방가르드는 적대주의와 행동주의로 벽을 해체한다. 반면 아카이브는 채택되어 구성된 것으로 미술관 안에 안전하게 놓인다. 그럼에도, 아카이브는 자신이 암시하는 관계들로 오브제의 표면에 변증법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레디메이드의 장치는 오브제를 제도적 혁명 기제로 만들지만, 아카이브의 장치는 오브제를 실재적 구원의 기제로 만든다. 아카이브의 오브제는 상징계를 벗어나는 욕망의 오브제이며, 이 욕망은 생산적이며 외부로 뻗어나간다. 억압하는 역사의 상징들 사이에서, 아카이브된 오브제가 그 대안적 계보로의 통로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하이데거적 탈은폐(Entbergung)가 아니.[3] 이것은 푸코(Michel Foucault)가 계보학이라고 칭하는, 인식이 스스로를 발명해 온역사적 상황들을 바라보고, 현재의 인식을 관통하는 이 불연속성들을 제시하려는 방법이다.[4]

 

8.

신이피는 <죽은 산의 냉철한 새 #2>에서 자신의 수집, 조사 행위를 영상으로 기록한다. 그는 살처분된 돼지들의 뼈를 발굴하는데, <죽은 산의 냉철한 새#2> <발굴한 돼지뼈들>은 작가가 행했던 일련의 조사 과정과 발굴 과정을 아카이브의 성격을 가진 영상과 오브제들을 전시한 것이다. <죽은 산의 냉철한 새#2>에서, 작가는 지난 몇 년 동안 구제역으로 인해 살처분되었던 돼지에 대해 조사한다. 작가는 돼지들이 어떠한 기준으로 예비살처분되는지 조사하고, 전국의 4천여 곳에 이르는 살처분 매립지를 직접 발굴해내며 이러한 조사 과정의 경험과 수사학적 서사를 함께 엮어 영상 형식으로 풀어낸다. 영상 내에서 실시간으로 발굴되는 돼지 뼈들은, 나레이터가 독백하듯 읊는 음성과 함께 수집되고 보관된다. 땅 속에서 드러나는 돼지 뼈들은, 온전하지 않고 부서져 있고, 깨져 있으며, 또 해체되어 있고, 분해되어 있다. 저 돼지 뼈들이 제시하는 것은 단순한 미적 오브제가 아니라 그것이 가지고 있던 역사이다. 그 역사는 고고학의 과정을 통해 직접적으로 또 강렬하게 발굴된다. 신문과 뉴스에 잊을 만하면 등장하던 구제역과 돼지 살처분은 스펙타클로 가득 메워진 세계에서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갖지 못하지만 그것의 역사와 지표가 우리 눈앞에 놓여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강렬한 실재를 인식하는 것은 숭고를 통해서 가능하다. 아카이빙은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가 말하는 선험적 숭고, 혹은 바디우(Alain Badiou)의 공백(vide)에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다.[5] 또한 이것은 나의 세계 안에 타자의 세계를 포함하는 것이고, 동시에 타자의 세계에 나의 세계를 끼워넣는 것이다. 세계의 관계들은 항상 어떤 작은 사건들로 매개된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명확한 구분이 사라지며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도 공적인 역사처럼 여길 수 있게 되며, 대단히 공적인 역사도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처럼 여길 수 있게 된다.

 

9.

아카이브는 어떤 것의 역사를 미술관 내에서 실재화한다. 또한 그 이미지는 일회적으로 소비된다. 파편들로서의 역사는 미술관을 나오는 순간 잔해가 된다. 이미 조각난 시간에 살고있는 우리에게 아카이브 아트가 제공하는 것은 또 하나의 조각난 시간이다. 아카이브 아트가 복기해내고자 하는 역사는 구체적 사건으로 새롭게 계보화되기 보다는 구원의 계시이자 동시에 종말을 맞는 묵시록으로 인식된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혹은 기록 저장소에서 만나는 아카이브들은 분명 자신의 역사를 내재면으로 끌어오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일시적 사건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일시적 사건은 쉽게 망각된다. 그렇기에 아카이브가 갖는 힘은 단순히 대상의 소외된 역사가 현재로 편입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역사의 파편들이 조형적 이미지로 '지금'의 인식과 어떤 충격적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에 있다. 대상의 본질적이고 존재론적인,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과거와 지금의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 행하는 즉각적인 몽타주에 의해 새로운 의미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이로써 아카이브는 자신이 설치된 장소에 객체가 실재화되는, 이미지공간(Bildraum)을 가능케 한다.[6] 이미지공간 안에 주체는 없다. 주체의 신체는 이미지들 사이에서 또 하나의 객체일 뿐이며 다른 객체들과의 경계는 끊임없이 재조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침투는 이미지들의 실천적 행위에 의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 아카이브는 그 자체로 수집된 물질이기도 하지만 긍정적 욕망을 가능케 하는 오브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오브제의 이미지가 욕망 이미지라면 내부와 외부의 경계는 본래적으로 해체되어 있기 때문에, 이미지는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의 실재적인 변형을 야기한다. 다시 한번 벤야민의 표현을 빌자면 이는 범속한 각성(profane Erleuchtung)일 것이다. 이 순간은 상징계적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이다. 아카이브가 제공하는 역사 이미지는 종말의 순간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며 인식의 현재에 드러나게 된다. 수집된 오브제들은 강력한 변증법적 이미지의 힘을 갖는다. 이 힘을 허가하는 것은 유물론적 관계들을 드러내는 장치들이다.

 

10.

《식물계》(통의동 보안여관, 2020)에서 전시된 수집물들은 시간을 지시하지 않는다. 오직 횡단하는관계와 공간의 확장을 요구한다. 본 전시에서 수집된 것들은 모두 지표이다. 미켈레 롯다(Michele Rodda)의 네이처 프린팅(Nature Printing)은 식물의 흔적과 자국이며 그것이 존재했거나, 혹은 존재하고 있다는 사건을 비춘다. 그리고 상상능력은 지표가 지시하는 실재를 지금, 여기와 관계맺는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의 고전적 기호학을 빌리자면, 롯다의 네이처 프린팅은 그것의 원본이 되는 식물의 지표이며 상징화되지 않는 어떤 증상(symptom)이다. 그리고 지표적 아카이브가 보이는 증상은 다름아닌 식물과의 내재적 관계이다. 마찬가지로 양혜규의 《O2 & H2O》에서 전시된 목우공방의 숟가락 또한 자신이 증상으로 제시하는 관계의 내재면(plan of immanence)에 속한 것이다. 숟가락의 표면에 남아있는 나이프 결들과 구상적 형태들, 그리고 작가의 에세이. 할 포스터의 지적처럼 어떤 아카이브는 실패한 미래주의적 전망이지만 그것이 구원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때의 구원은 정지된 지금시간에서 일어나는 인식론적 구원이다.

 

11.

아카이브는 선험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수집되고 구성된 것이다. 수집된 것들은 무작위적이고 즉흥적인 관계들이다. 아카이브 구성은 스스로의 존재 흔적과 수행성을 직접 현시하기에, 능동적이다. 수집된 것들은 스스로가 속했던 사건에서 돌출(excroissance)되어 현재와의 관계를 매개한다. 이러한 존재들은 사건 외부의 다른 것에 의해 설명될 수 없으며 오직 내부에서 돌출된 관계와 수행성에 의해 설명된다. 그렇다면 아카이브에 대한 논의는 근원의 문제로 소급될 것이다.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아카이브의 동력원을 근원에 가닿기 위한 열망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런 근원에 대한 맹신은 토대 없는 허구에 의존한다. 데리다에게 아카이브는 근원에 도달할 수 없는 타자성의 운동이며 전적으로 유령적인 것이다. 아카이브는 일자(一者)가 아니며 대리보충(supplement)적으로 작동한다. 즉 의존적인 불안정성은 아카이브의 선험적 구조이다. 데리다는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하는데, 아카이브는 죽음충동적 구조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에게 아카이브는 외부에서 진리성을 보장받지 못하며 오직 유령과 같은 것들에 기대는 자기파괴적 구성이다. 이러한 아카이브는 역설적으로 반-아카이브적인 충동이며 말소 하에 놓인다. 즉 성전에 안치된 성인의 유해와 같이 상징적 아카이브는 우리에게 유령으로 남는다.[7] 그러나, 데리다가 제시하는 아카이브와는 달리 구성된 아카이브는 유령이 아닌 어떤 실재로 실체화되기 위해, 내적인 완결성을 위한 장치를 요구한다. – 수집되고 기록된 것 A와 그것이 속했던 역사 B를 횡단하는 입자적 관계들을 드러낸다. 돼지의 뼈, 숟기락, 인터뷰, 유품들은 빙의된 물건이 아니라 관계로 들어찬 내재면에서 수집되어 온 것이다. 데리다는 아카이브가 무질서한 부재의 흔적이라 말하지만, 유물론적으로 정교하게 구성된 아카이브는 고고학적 과정을 통해 부재한 자리에 새로운 존재를 채워넣는다.

 

12.

주지하듯 아카이브는 우연적이고 불확실하다. 그러나 구성된 아카이브가 드러내는 것들은 형이상학적 지향점이 아니다. 아카이브는 변증법적 이미지로 하여금 고유한 시간성과 공간성 그리고 지금-여기와의 횡단을 현시한다. 아카이브는 현시할 수 없는 것을 현시한다. 아카이브는 기원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현재를 구원하려는 열망에 의해 작동한다. 오브제들이 열어젖히는 ()장소는 분명히 자기파괴적이지만, 근원으로 소급되는 것이 아니다. 그 장소는 분명 근원을 지시하고 있지만 바로 지금에는 근원과의 결합으로 치닫지 않으며, 현재와의 이질적 충돌 효과를 제공할 뿐이다. 재현 혹은 상징과는 달리 기록된 것혹은 지표적인 것은 필연적으로 근원을 향하지만 그것은 오직 현재에 봉사한다. 아카이브의 전 과정은 기호이다.

 

13.

실재적인 맥락에서 돌출된 오브제는 결국 그 존재의미가 끊임없이 추측되며 지양된다. 아카이브와 그것의 역사의 경계, 그 역사와 주체의 경계. 버틀러(Judith Pamela Butler)의 언급과 같이, 담론과 물질의 순환은 그것들 사이의 경계선을 끊임없이 재설정하는 수행적 과정 안에서 계속해서 움직이며, 서로에게 관계한다.[8] 즉 주목해야 할 것은 아카이브와 근원, 양자의 독립된 존재론이 아니라 실재적 관계성에서의 고찰이다. 결국 아카이브는 형이상학이 아닌 무작위적 물질의 수행인 것이다. 인간의 역사뿐만 아니라, 《식물계》, 〈죽은 산의 냉철한 새 #2〉에서 나타나는 비인간 존재자들은 각자의 수행능력으로 수많은 물질적 사건들과 관계해 나간다. 이 물질들은 어느 하나도 단일한 일자로 존재할 수 없으며 여타의 다른 물질과 항상 새롭게 뒤얽힌다. 그러나 사건 안의 물질들이 어떤 유기체적 전체성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각자의 수행성으로 서로의 경계를 재설정한다. 따라서 물질은 개체이자, 연속적 실체이다. 이러한 신유물론적 접근에 따라, 아카이브가 현시하는 것은 단순한 인식론적 구성뿐만이 아닌 존재론적인 것이다. 사건은 구심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물질들의 수행성으로 함께 구축(co-constructed)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카이브는 역사적 관계 구축에 다름없다. 아카이브는 형이상학적인 혹은 불변하는 구조를 탈은폐하기보다, 돌출되는 수집품들과 내부에서만 공명하는 증언들이 우리 앞에 놓이기까지의 실재적 조건들을 현시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아카이브가 성취하려는 것은 이러한 조건들과 현재의 인식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어떤 이질적 의미이다. 때문에 구성된 아카이브는 상징이 아니다.

크리스토퍼 갬블(Christopher N. Gamble), 조수아 하난(Joshua S. Hanan), 토마스 네일(Thomas Nail)과 같은 신유물론자들에게, 역사는 인간이 함입된 수행들의 물질적 독해와 기술(記述)’로 정의된다. 그것이 과거의 것으로 향한다고 해도, 결국 역사의 독해는 현재에 의해 제한되며 현재 물질의 수행성과 뒤얽히는 영역적인 존재론(regional ontology)이다. 아카이브는 결국 역사와 현재 사이의 모든 사건들을 다시 쓰는 것이다. 확장하는 관계들은 수행성의 얽힘이고 이것의 독해는 새로운 존재론을 가능케 한다. 확장과 재기술, 그리고 드러냄은 아카이브를 아카이브로 존재하게 한다.

 

 

 

 

 

 

 

 

 

 

참고문헌

- Derrida, Jaques. 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 Foster, Hal. “An Archival Impulse”. October 110 (2004 Fall): 3-22

- 조르조 아감벤.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정문영 역. 새물결. 2012

- 알랭 바디우. 『비미학』. 장태순 역. 이학사. 2010

- 레비 브라이언트. 『존재의 지도』. 김효진 역. 갈무리 .2020

- 미셸 푸코, 『지식의 고고학』, 이정우 역, 민음사. 2000)

- Dolphijn, Rick. van der Tuin, Iris. New Materialism. Open Humanities Press. 2012. 38-47

- 노베르트 볼츠. 빌렘 반 라이엔. 『발터 벤야민』. 김득룡 역. 서광사. 2000

- Gamble, Christopher. Hanan, Joshua. Nail, Thomas. WHAT ISNEW MATERIALISM?, Angelaki. 24:6(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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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al Foster, “An Archival Impulse”, October 110 (Fall 2004), p. 3-22

[2] 조르조 아감벤,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정문영 (), 서울: 새물결, 2012, p. 222 에서 재인용

[3] 피에르 테브나즈,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김동규 (), 서울: 그린비, 2011, p. 50-68 에서 재인용

[4] Donald Bouchard, Sherry Simon, “Nietzche, Genealogy, History”, New York: Cornell University Press, 1977, p.154 에서 재인용

[5] 연구모임 사회비판과대안, 『포스트모던의 테제들』, 서울: 사월의책, 2012, p.195-198 에서 재인용

[6] Walter Benjamin., “Der Sürrealismus: Die letzte Momentaufnahme der europäischen Intelligenz”,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77, p. 295-310.

[7] Jacques Derrida, “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 Eric Prenowitz,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p. 21-89 에서 참조

[8] C. Gamble, J Hanan, T. Nail, WHAT ISNEW MATERIALISM?, Angelaki. 24:6 (2019), P. 111-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