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반과 상상, 음모론과 픽션: <발사 후 망각>의 조건
윤태균 (큐레이터 / 비평가)
1.
지난 2년간의 펜데믹이 야기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분야는 다름아닌 정치와 담론의 현장이다. 지난 21세기 초반의 격정적 체제 변환 속에서 COVID-19 바이러스는 이 격류를 가속(accelerate)했다. 2008년 이후 제동 없이 질주하던 금융 경제의 세계화는 지구 전역의 국가들을 세계 시장 경제의 부품 생산 공장으로 만들었다. 공산품, 연료, 자원과 더불어 자원까지도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금융 거래는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 기후 위기와 재난까지도 화폐 가치의 등락으로 물화한다. 이제 지구의 국가들은 서로에게 빠짐없이 관계하는 연쇄적 공동체가 되었다. 이 새로운 질서는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공화제이다. 이 시공간의 미래는 어떠한가. 각 국가들의 자급자족은 불가능하며 식량과 자원은 무기화된다. 예컨대 브라질은 옥수수 경작을 위해 열대우림을 불태우고 인도는 핸드폰 부품 생산을 위해 공장 매연으로 하늘을 가득 채우며 중국은 착취되는 값싼 인력으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의 가동을 가능케 한다. 러시아는 천연가스의 수출을 봉쇄하며 자원을 무기화하고,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이 감소함에 따라 유럽의 식량 가격은 빠르게 상승한다. 미국은 자국 기업에 면세 혜택을 부여하고 중국은 모든 국민의 정보를 데이터화하여 정부 센터에 보관한다. 와중에도 기후 위기의 증상은 강력하게 그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폭염과 홍수, 산불과 수온 상승. 우리는 오늘 아침 눈을 뜰 때부터 이미 끔찍한 미래를 살고있다.
1-2.
우리의 정신은 조종당하고 있다!
2.
암울한 정치지리학과 더불어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담론의 지리학이다. 세계화와 인터넷망의 광범위한 보급 이후 담론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경로, 그것이 재독해되고 재생산되는 장소는 더 이상 아카데미와 저널리즘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지리학에서 고려해야 할 지형은 대형 서버를 둔 커뮤니티의 전산망이다. 다층적이면서 추상적인 위기감은 공개적인 학회와 전통적 저널리즘에만 닥쳐오지 않았다. 체제의 위태로움과 도래하는 경보(alert)는 관료제의 통제되는 미디어보다는 저급한 무질서의 전산망에서 더 빠르게 확산되었다. 레딧(reddit)과 트위터, 개인 블로그와 디스코드(discord)는 아포리즘을 가장한 가벼운 주장들이 수 만개씩 업로드되며 저자를 잃어버린 채로, 심지어 스스로의 내용까지 침식되어 버린 채 배회한다. 이 서버 이용자들의 정치적 성향은 한 장소에 모여 엉겨붙고, 확대되며 그 원형을 알아볼 수 없게 된다. 구글 맵을 통해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세계의 풍경(물론 인공위성이 제공하는 완벽하게 제한된 이미지이지만)을 구경할 수도 있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집회와 전쟁, 학살을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관람할 수 있는 시간들이기에, 서버 이용자들은 부분적으로 채집된 이미지들을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피드(feed)는 같은 의견을 동어반복하는 이들끼리의 폐쇄된 세미나룸이다. 이들은 자신이 이해하는 세계의 기호체계를 서로에게 재확인하여 자신의 정치적 인지능력을 확립한다. 물론 이러한 형식의 미디어 방식은 20년 전에도 활발하게 작동되었지만, 2020년 이후 다시금 주목해야 할 것은 웹 전산망의 저급한 아포리즘 작가들이 거대한 정치적 실체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2-2.
웹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아카데미와 기성 정치에 대한 농도 짙은 환멸을 적나라하게 내던진다. 검증되지 않은 에세이 형식의 주장들, 극단적 미래를 상상하기, 굴러다니는 단편적 게시글들을 모아 가상의 사상(ism)을 창조하기. (펄프 픽션(pulp fiction)으로서의 가속주의 텍스트들, 혹은 신유물론의 열렬한 옹호는 좌파와 우파에게 다르게 전유된다.) 떠도는 텍스트들은 좌파와 우파의 수집가들에 의해 체계적인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이론으로 공표되었는데, 이 이론들은 이름을 부여받고 추종자들을 모집하며 으스스한 오컬트 단체가 아닌, 기존의 시스템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중력으로 나타난다. 이들 중 우파는 신자유주의에 기반하여 자본주의에 극단의 속도를 부여하려 한다. 자본주의의 무한한 진행이 기술적 특이점을 형성하고, 이 특이점이 삶과 체제를 재편하리라 믿는 것이다. 인간 신체의 불멸과 함께, 이들은 정부화된 기업이 통제하는 미래를 꿈꾼다.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 국가주의는 자연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우파적 전유는 행동주의로 격화되어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다. 신반동주의, 대안우파, 트럼프주의는 이들의 또다른 판본이다. 한편, 소련 붕괴와 금융 위기 이후 서서히 구심점을 잃던 좌파는 패배감에 젖어 지역적 공동체주의, 형식적 직접민주주의, 감정적 연대에 머물러 구조 안에서 무력한 봉사단체로 남고 말았다. 여전히 오지 않을 구원을 기다리는 혁명가들과 달리, 시급한 위기를 감지한 좌파는 떠도는 가속주의 텍스트들에서 타개점을 찾는다. 이들은 자본주의가 달성해낸 첨단의 산업적 토대들을 사용하여 세계를 재사유하고 자본주의를 극단까지 밀어붙여 자본주의가 가지는 자기파괴를 부추긴다. 그리고 그 후에 도래할 미래를 상상한다.
2-3.
정도만 다를 뿐, 우린 항상 피해 망상에 시달린다.
3-3.
그들은 후기구조주의와 마르크스, 들뢰즈와 과타리의 무작위적 혼종으로, 이론을 펄프 픽션으로 전유한다. 온갖 유행하는 이론들은 창조된 세계관의 가상 서사 안에서 상징적 기호-도상으로 대체된다. 사실 이들이 취하는 담론 형식은 과학적 세계 밑에서 떠돌던 음산한 음모론들을 참조한다. 음모론은 유행하는 단편적 사실들을 끌어모아, 그것들을 꿰매고 메꾸어 픽션의 형식으로 주조한다. 음모론이 이론과 다른 것은 그것이 강력한 위반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위반은 기존 규칙의 내파, 혹은 외파를 부추긴다.
4.
오늘날의 음모론은 폐쇄적인 사이비 종교보다는 느슨한 동호회 형태의 이합집산을 추구한다. 음모론의 명제는 우리가 읽는 텍스트에 섞여 들어가고 의심 없이 공유된다. 그렇기에 일부 편집증 증세로 취급받던 음모론들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세계에 깊게 침투해 있을 것이다.
4-2.
그러나 음모론은 경험주의와 과학주의를 맹신하는 최근 자본주의의 새로운 판본에서, 심각하게 범죄화되었다. 그들은 세련된 자본주의에 저항하지 못하는 일종의 정보 부랑자이며 일원론의 과학주의적 세계를 더럽히는 경범죄자, 방화범들이다. 이다. 그렇기에 음모론을 운반하는 개체들은 사회를 경멸함과 동시에 사회에 교화되고자 한다. 편집증이지만 정신분열이 되기 싫은 편집증이다. 그렇기에 편집증은 픽션의 형식을 취한다. 서사 형식은 생명력을 가지는 이미지로서, 종착지 없는 욕망의 방향성을 지시한다.
5.
그러나 이들이 가지는 위반의 힘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5-2.
전파 무기의 마인드 컨트롤 기능은 우리마저 이 과학주의의 세계로 밀어 쳐넣을 것이다….
6.
편집증적 비평의 저급한 버전으로서, 음모론에는 항상 기성 권력 체계에 대한 적대, 그리고 융화가 양립한다.
i) 권력에 대한 적대: 대통령, 재벌, 백만장자, 과학자, -에피스테메, 지식
ii) 사회로의 융화: 기성 과학 체계로 인준될 수 있고자 하는 실험을 지속하고, 기존 과학 언어로 자신들의 이론을 설명하려 한다.
7.
게오르크 루카치(Georg Lukacs)나 프레드릭 제머슨(Fredric Jameson)의 선행 이론을 따라, 나는 서사가 이데올로기적 상상과 사회적 상징 위에 올라타 있다고 상정한다. 그러나 신화 이미지로서 픽션-서사는 항상 무대 위 연극으로 취급받는데, 그것이 ‘상상되고’, ‘가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실재의 환영으로서 픽션-서사는 그것이 작성된 조건의 욕망에 의해 결정된다. 예컨대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Butler)의 아프로퓨쳐리즘(AfroFuturism), 레자 네가레스타니(Reza Negarestani)의 이론적 사변 소설 “사이클로노피디아”(Cyclonopedia).
7-1.
하지만 음모론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문학의 장르 형식이 아니라 과학적 측정이라 믿는다. 무엇이 과학을 음모론이 아닌 ‘진짜’로 여겨지게 하는가. 음모론은 집단병리현상이자 위반을 욕망하는 대안의 진원지이다. 음모론은 항상 사회 시스템에 위기감이 몰려올 때에 그 반대편에서 등장했다. 세계와 시스템을 향한 의심, 가능성 없는 변화로 인한 무력감은 전염병처럼 번져가기 마련이다. 음모론은 오늘날과 같은 정보 과잉의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과거에, 항상 미래는-그러니까 지금은- 음모론과 같은 허접하지만 풍부한 상상력으로 열어젖혀져 왔다. 연금술, 일루미나티, 상대성이론, 랩틸리언, 사이언톨로지, 지동설, 양자 얽힘, 51구역. 예상과 다르게, 음모론을 분석하는 데에 ‘탈-진실’(post-truth)은 별 도움이 안된다. 음모론은 편집증의 외파이므로 진실은 상징적 기호 체계에서 공인된 언어적 분석의 결과이다. 나는 그 끔찍한 상관주의나 사변적 실재론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에, 독자적 실재들 가운데서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분류하고 싶지는 않다. 현상은 관측과 물질이 상호 간섭하는, 미결정적 사건들이 중첩된 특이점이다. 따라서 음모론의 생성 지점을 찾아내고 음모론자들의 심리를 밝혀내는 것보다 음모론 자체가 가지는 서사적 조건과 경로를 파헤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예컨대 우리는 전파 무기를 통한 마인드 컨트롤 음모론을 안티-백서(Anti-vaxxer)와 비교할 수 있다. 무엇이 그들에게 위기의식을 야기했는가? 무엇이 그들의 주장들을 체계화할 수 있도록 도왔는가? 그들은 어떤 증거에 의지하며 그 증거들을 어떻게 편집하는가? 그들이 붕괴시키고자 하는 권위는 무엇(혹은 누구)이며 편입되려고 하는 체계는 무엇인가?
8.
과학주의와 실증주의의 붕괴는 우리가 상실한 미래를 되찾기 위한 선제조건이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판본은 새로운 미디어와 과학 언어의 세계화를 통해 하나의 세계관을 모두에게 강요한다. 도태되는 음모론자는 단순한 병리 환자로 멸시되고 격리된다. 상상력은 궁핍해지고 오로지 픽션의 형식으로 제한된다. 우리는 이 픽션을 사실로 여기고, 사실을 픽션으로 여겨 그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야 한다.
9.
한하예닮은 음모론자들이 직조한 서사 구조를 전시장 내에 다시금 조성한다. 정보-인터페이스-관객의 삼중 구조 내에서, 기호의 교환 체계가 형성된다. 이 기호 체계와 인-아웃풋의 교환은 너무나도 명확하여 관객들은 자신들이 서사와 그 스펙타클 감상을 위한 세트장에 위치한다고 자각한다. 그러나 화면에 보여지는 자료들은 다큐멘터리와 연출을 구분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진짜/가짜를 가려내는 행동은 중요하지 않다. 이 현장에서는 오히려 음모론의 ‘터무니없는’ 체계들에 우리가 개입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방식만이 떠오른다. 이 현장에서 마인드 컨트롤이 행해진다는 주장은 처음부터 음모론이라 설명되지 않고, 관객에 의해 비로소 하나의 음모론으로 작동한다. 전파 무기는 관객이 참여하지 않으면 작동되지 않지만, 관객은 그것이 자신이 방문하기 전에도 작동해 왔던 것이라 믿는다. 이후 자신이 전파 무기를 작동시켰다는 것을 알아챈 후에는, 전파 무기를 믿었던 짧은 시간의 경험들이 믿음과 의심을 뒤섞는다. 음모론은 과학의 뒷면이다. 그것은 음모론에 대한 믿음 뿐만이 아닌 과학에 대한 믿음으로도 작동한다. 사회의 강력한 믿음 체계는 항상 전복을 억제하며 스스로를 견고화한다. 음모론은 이 믿음에 대한 피해 의식으로부터 시작된다. 관객들은 자신들이 잠깐이나마 보고 믿었던 현상들을 반추하며 새로운 믿음이 생겨나는 과정을 이해하지만, 전시장을 떠날 때에는 음모론에 대한 불신만을 챙겨 나갈 것이다. 전시장과 그 바깥의 경계는 너무나도 명확하여, 밖으로 나가는 순간 다시 과학의 세계로 입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10.
세계와 관계맺으며 자신과 타자-세계의 경계를 설정하는 행위가 오로지 소비와 소유로 제한되는 금융자본주의 하에서, 믿음을 기반으로 한 담론의 형성은 새로운 기호의 교환을 암시한다. 픽션이 과학이 되고, 과학이 철학이 되며, 철학이 픽션이 되는 것. 우리가 믿어왔던 버전의 세계는 붕괴하겠지만 분명 여러 버전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질 것이다. 상상적, 사변적 서사를 읽는 것은 이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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