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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할 포스터(Hal Foster)의 아방가르드론 「누가 네오-아방가르드를 두려워 하는가?」– 인과성, 시간성, 서사성 그리고 사후성(Nachträ

할 포스터(Hal Foster)의 아방가르드론 「누가 네오-아방가르드를 두려워 하는가?」
– 인과성, 시간성, 서사성 그리고 사후성(Nachträglichkeit)

* 번역본 ‘할 포스터. 이영욱 외 역.「누가 네오-아방가르드를 두려워 하는가?」. 『실재의 귀환』. 경성대학교출판부. 2003.’를 참조함

1. 인과성, 시간성, 서사성
본 발제를 시작하기에 가장 적합한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은 수사적 선언이다. ‘하나의 유령-아방가르드라는 유령이 북미와 서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주지하듯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1848) 서문의 수사적 문장, “하나의 유령-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는 광범위하게 전유되어 왔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그의 저서 『마크르스의 유령들』(1993)에서 마르크스가 지칭한 ‘유령’(spectre)의 현존 방식을 다룬다. 데리다가 설명하는 유령은 기존의 역사주의와 전통적 인식의 시공간을 전복한다. 유령의 현존이 다름아닌 차연(différance)에 기인하기 때문인데, 차연은 대상의 현존을 지금, 여기에 고정된 것이 아닌 확정되지 않은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로 밀어낸다. 대상의 언어적 결정은 ‘차이’로서 지속적으로 지연되는 것이다. 결국 대상은 존재할 수 없다. 현존하지만 동시에 부재하는 것이다. 대상이 관계하는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는 통시적인 시공간의 단면에서, 모호하고 으스스한 유령으로 현존/부재할 뿐이다. 그렇기에, 데리다가 해부하는, 당시 서구 사회에 거주하던 ‘마르크스의 유령’은 확정되지 않은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에서 도래한 흔적이다.
할 포스터(Hal Foster) 또한 아방가르드의 문제를 차이와 반복, 그리고 지연의 측면에서 설명한다. 포스터는 미술사 (혹은 미술의 관례) 뿐만 아니라 2차대전 직후의 역사적 상황에서 나타나는 동시적 현상들을 귀납적으로 분석한다. 2차대전 이후 “넘쳐나는 포스트와 네오”에 존재하는 수많은 반복과 단절들을 하나의 구조 짓기 방법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1] 이 때 포스터는 미셸 푸코(Michel Faoucault)를 인용하며 주장하는 것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시원적 텍스트로 다시금 복귀하는 것은 어떤 함의를 내포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2] 이 복귀는 다시 말해 “엄밀한 독해”로서 기존 담론에 단지 몇 가지 요소를 추가하는 것이 아닌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텍스트가 “어떻게 의미하는가 그리고 의미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어떻게 변형시켰는가”를 발견한다. 예컨대1960년대 루이 알튀세(Louis Althusser)는 마르크스에 대한 실존주의적 독해가 시도하던 휴머니즘적 해석이, 아닌 마르크스가 행했던 “인식론적 단절”에 집중했다. 또한 자크 라캉(Jacques Laca)은 “자아 심리학을 중시한 휴머니스트 프로이트”가 아닌 무의식, 언어와 같은 층위들을 통해 “탈중심화된 관계”등을 폭로하는 프로이트의 급진성에 집중하였다.[3] 그러나 과거 텍스트에 대한 반복과 단절들은 결코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포스터는 알튀세의 경우 많은 해석들을 거치며 상실된 단절들을 다시금 복귀시킨다고 보았고, 라캉의 경우 프로이트의 아직 밝혀지지 않은, 즉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언어학과의 잠재된 연계를 찾아낸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구조적 방법과 동기는 하나로 설명될 수 있다. 알튀세와 라캉의 두 ‘엄밀한 독해’ 모두,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텍스트가 원래 가지고 있었지만 상실된 실천 즉 “구성적 생략”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이 엄밀한 독해가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마르크스와 프로이트가 가지고 있던 본래의 급진성, 그리고 구조의 회복이다. 포스터가 문단의 마지막에서 정리하듯, 이러한 전략은 과거의 상실된 실천과 “다시 연결”(reconnect)하여 시원적 텍스트에 대한 현재의 잘못된 해석 혹은 억압적 해석에서 “떨어져 나오기”(disconnect)라는 것이다.[4]
그러나 포스터에 의하면, 이 엄밀한 독해는 적어도 2차 대전 직후의 미술에서는 행해지지 않았다. 1950년대의 발견된 오브제, 1960년대의 레디메이드는 단지 과거의 실천, 즉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가지던 양식 혹은 테마만을 모방하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예술가들은 왜 하필 이 시기에 역사적 아방가르드에 대한 재독해를 시도한 것인가? 도널드 저드(Donald Judd)가 「특수한 대상들」(1965)에서 작성한 참조점으로서의 무수한 선구자 목록들은 전후 시기의 미술과 어떤 연관성도 가지지 않는 듯 보인다. 예컨대 포스터가 “정신나간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뒤샹과 뉴욕 화파 회화의 병치이다. 하지만 포스터는 저드가 작성한 이 목록들이 다름아닌 “새로운 실천을 추출”하려는 시도이기에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시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와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eid)의 모더니즘 모델은 미술계의 주류 교조, 규범이었는데 당시의 “야심찬” 미술가들은 역사적 아방가르드를 지침 삼아 자율적 미술과 부르주아적 원리들를 극복하고자 했다.[5] 이러한 측면에서 포스터는 이 상이한 두 실천, 다다, 러시아 구축주의와 (어쩌면 부정적 오독으로까지 보이는) 네오-아방가르드에서 어떤 변증법적 확장을 통해 공유하는 지점을 찾아낸다.

“즉 다다가 그랬던 것처럼, 미술 제도의 미학적 범주들에 대한 인식론적 탐구를 통해서 그 제도를 규정하는 작업 그리고/또는 미술 제도의 형식적 관례들에 대한 무정부주의적 공격을 통해 그 제도를 파괴하는 작업을 모색하거나, 혹은 러시아 구축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혁명 사회의 유물론적인 실천들에 따라 미술 제도를 변형하는 작업을 모색했던 것이다.”[6]

그러나 1950년대 과거 아방가르드의 형식을 재활용하고, 1960년대에는 이렇게 활용된 50년대의 결과들을 비판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압박과 동시에 아방가르드는 자신이 공격했던 ‘현대미술관’과 같은 제도적 기관들에 의해 수용되는 등 모순적이고 복잡한 지점에 위치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논지에서처럼, 포스터는 네오-아방가르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과성, 시간성, 서사성”의 복합적 설명이 결정적이라 주장한다. 네오-아방가르드를 단지 현재의 존재로 파악하여 탈역사화하는 것은 아방가르드가 가지는 강력한 실천, 즉 “예술적 형식과 정치적 형식의 상호접합(coarticulation)”을 상실시키기 때문이다.[7] (절충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설명이 그렇다.) 따라서 포스터는 확정되지 않은 과거의 아방가르드를 다시 평가하여 복합적으로 만들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아방가르드를 지원하기 위해 아방가르드의 새로운 계보를 요청한다. 이 계보는 의미의 정착을 미루는 과거의 아방가르드와 이 정착을 수행할 수 있는 현재의 아방가르드,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의미 정착을 미루는 현재의 아방가르드를 약호화 할 수 있는 미래의 아방가르드를 포괄한다. 결국 아방가르드는 “예상된 미래들과 재구성된 과거들 간의 복잡한 이어달리기”로 계보화될 수 있다.[8] 아방가르드는 불안한 과거와 불확정적 미래라는 시간성과 역사적 상황으로 구성되는 서사, 그리고 복합적인 인과의 흔적으로서 항상 미술을 배회하는 유령인 것이다. 이 내용은 본문의 마지막 장에 대한 설명에서 완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포스터는 인과성, 시간성, 서사성이라는 키워드를 견지로 자신의 아방가르드론을 전개해 나간다. 본문에서 그의 글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로 페터 뷔르거(Peter Bürger)의 아방가르드 이론을 분석, 비판, 그리고 수정하며 그에 대응하는 자신의 아방가르드 이론을 제시한다. 두 번째로, 네오-아방가르드가 처한 모순적 운명, 즉 제도화라는 문제를 역사적인 상황 안에서 다룬다. 두 번째 장의 내용을 전개할 때에도 포스터는 인과성, 시간성, 서사성이라는 설명 도구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본문의 핵심적인 내용이며 아방가르드가 ‘어떻게’ 실천하고,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장이다. 이 때 포스터는 정신분석학적 분석으로 주체화와 역사화를 등치한다.

2. 페터 뷔르거의 아방가르드 이론 비판
뷔르거의 『아방가르드 이론』(1974)은 그것의 내용이 적합한지와는 별개로 여전히 아방가르드 논의에 필요한 이론적, 개념적 틀을 제공한다. (역사적 아방가르드, 네오-아방가르드라는 익숙한 개념들 또한 뷔르거의 작업이다.) 그렇기에 포스터는 뷔르거의 텍스트를 재독해함으로써, 이론의 취약점들을 돌파하고 새로운, 혹은 대안적인 설명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뷔르거의 부정확한 묘사와 제한된 대상 선택, 모든 아방가르드 활동들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맹점들에도 불구하고 포스터가 가장 문제시하는 내용은 뷔르거가 전후의 모든 아방가르드를 단순히 실패한 반복이라고 취급하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뷔르거는 벤야민(Walter Bejamin)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에도 벤야민이 기각했던 “진정성과 독창성 그리고 단일성”이라는 가치를 아방가르드의 역사화에 적용한다.[9] 다시 말해 뷔르거가 네오-아방가르드를 실패한 반복이라고 상정할 때, 그는  역사적 아방가르드를 이미 완전히 그 의미를 완전히 드러낸 “절대적인 기원”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포스터가 예로 들듯, 뒤샹이나 피카소 또한 그 시원부터 역사적 분기점을 설정할 수 있는 지점에 있지 않았다. 당시의 제도적 상황, 그리고 비평적 독해와 아방가르드적 실천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10] 결국 역사화는 지연된 시간성에 의해 수행되는 약호화와 같다. 뷔르거가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라는 탁월한 역사적 개념쌍을 도입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포스터는 뷔르거가 포착한 “미학적 범주의 역사성”은 수용한다. 그러나 뷔르거의 역사화 전략은, 이후의 설명과 같이 편협하고 단순한 역사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11]
뷔르거의 역사주의는 또 다른 모순점들을 내포한다. 먼저, 뷔르거가 출발하는 마르크스의 역사화 전제 “한 대상의 전개와 그것에 대한 인식 가능성 사이의 연계”는 예술에 대한 이해 정도는 예술의 진전 정도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인식은 실재를 초과할 수 없는 것이다. 부르주아 예술에 대한 아방가르드의 이해 또한 그러하다. 뷔르거는 부르주아 예술의 전개를 세 단계로 나누고 아방가르드 또한 그에 대응시킨다. 1) 18세기 말 계몽주의 미학에서 예술에게 요청된 자율성 2) 19세기 말 자율성이 예술의 주제가 되었을 때의 유미주의적 전개 3) 20세기 초 예술의 사용가치를 회복하고자 했던 생산주의자들, 혹은 예술의 무용성을 확대하고자 했던 다다이스트들의 요구. 뷔르거는 이 전개 과정을 “불균등하고 모순적”이라 말하지만 그는 이 단계를 진화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역사주의에 정체되어 있다. 포스터는 뷔르거가 언명한 스스로의 위치, 즉 마르크스를 다시금 인용하며 뷔르거의 모순을 비판하고 동시에 자신의 아방가르드 이론을 지지한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기본적인 통찰들이-노동가치론뿐만 아니라, 계급투쟁이라는 역사적 동력학까지도- 그의 시대에 이르기 전까지는 명료화될 수 없었다는 점에 대해 숙고한다.”[12]

뷔르거는 결국 서술된 역사를 최종적인 것, 고정적인 것, 어떠한 것에 대한 결과로 파악하게 된다. 벤야민이 극도로 경계한 역사주의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뷔르거에게는 네오-아방가르드에 해당하는, 이미 완료된 작업을 다시금 되풀이하는 행위는 아무 차이를 가지지 않는 반복에 불과한 것 혹은 실패한 반복으로서의 퇴행이 된다. 더욱이, 뷔르거는 네오-아방가르드가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완결한, 부르주아적 원리에 대한 비판을 무화하고 다시금 복귀시킨다 말한다. 뷔르거에 입장에서 이는 명백한 ‘퇴행’이다.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반-미학(anti-aesthetic)과 위반적 실천을 자율적인 미학과 제도의 궤도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물론 포스터가 나열하는 예시들, 제스퍼 존스(Jasper Johns), 아르망(Arman)의 경우와 같이 분명 레디메이드의 형식을 미학적으로 서술하고 미술-상품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명백히 드러난다. 그러나 포스터는 뷔르거의 분석이 단지 이 가시적 사건들에서 정지했다고 평가한다. 뷔르거에게 네오-아방가르드의 사례란 이 단편적 상황들이 전부라는 것이다.
뷔르거가 취하는 이분적 개념쌍인 “영웅적 과거”와 “실패한 현재”는 분명 서로에게 이율배반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13]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전유했던 역사적 관례로서의 양식, 위반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던 그 양식은 위르겐 하버미스(Jürgen Habermas)의 비판과 같이 결국 “동일한 층위의 이데올로기에서의 역전 현상”에 불과해지게 될 것이다.[14] 역사주의의 ‘탈역사적인’ 설명은 결국 역사적 아방가르드 또한 자의적인 예술로 파악하게 되는 여지를 마련한다. 역사적 아방가르드를 위와 같이 설명하게 된다면 네오-아방가르드에 가해지는 “그 어떤 의미라도 설정 가능하다”는 비판과 다른 종류의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15] 포스터는 이러한 뷔르거의 정체를 해결하기 위해 뷔르거의 명제를 폐기하기보다는 수정한다. 탈역사적인 역사주의에 과거와 현재, 즉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 간의 시간적 교류를 추가하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러한 시간성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직접적 인과가 아니다. 복합적인 관계들과 역사적 상황들로 고려되는 “예상과 재구성”을 통한 이어달리기이다.[16] 두 아방가르드를 역사적으로, 그리고 통시적으로 고찰할 때에, 역사적 아방가르드는 네오 아방가르드에 대한 예상이며 네오-아방가르드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에 대한 재구성이다. 이는 네오-네오-아방가르드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모든 예술은 역사성을 가지고 있기에, 뷔르거가 진전과 퇴행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인 ‘완결된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실천’은 이외에도 가능한 또다른 평가 기준들을 무시한 선택적 결과이다. 포스터의 주장과 같이, 네오-아방가르드는 “새로운 미학적 경험, 인식적 연관, 정치적 개입”들을 생산해 냈기 때문이다. 포스터는 다시금 자신의 주장을 의문문으로 역설한다. “네오-아방가르드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기획을 취소한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처음으로 이해한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어서 아방가르드에 대한 낭만적 태도를 덧붙인다. “정신분석에서와 마찬가지로, 미술에서도 창조적인 비판은 끝이 없는 것이며, 그리고 그것은 좋은 일이다.”[17]
한편,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수사학적 선언들을 아방가르드 그 자체의 역할로 여겼던 뷔르거는 아방가르드의 모방적 측면과 유토피아적 측면을 읽어내지 못한다. 예컨대 쾰른 다다와 같이 세계를 조롱하기 위해 현대 세계를 모방하기도 하며, 데 스틸(de stijl)과 같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불러와 현재에 대한 비판을 꾀하기도 한다. 이는 아방가르드가 단순히 위반과 파괴를 향하는 무정부주의적 운동이 아닌 “예술의 언어와 제도, 구조와 관련한” 맥락적이고 수행적 운동이라는 것을 입증한다.[18] 마찬가지로 포스터는 아방가르드가 예술과 삶, 혹은 제도와 관례의 영역을 붕괴시키려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 간극의 긴장을 유지하고 주어진 특정한 시공간에서 “규정된 미적 경험의 틀이나 체제”를 시험해 보는 것이라 말한다.[19] 같은 측면에서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미학적 관례들을 다룬다면, 네오-아방가르드는 제도적인 틀을 시험한다.[20] 예컨대 알렉산더 로드첸코의 <순수한 색채들: 빨강, 노랑, 파랑>이 예술의 관례적인 것을 차이로서 드러내 보였지만, 그것이 미술 제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뒤샹의 변기 또한 미술이 위치하던 시공간의 관례들을 폭로한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적 아방가르드는 체계적 분석을 통한 작업이 아닌 사물/작품을 통해 관례적 조건들을 명료하게 선언했다.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이러했다면, 마르셀 브로타스(Marcel Broodthaers), 다니엘 뷔렌(Daniel Buren), 마이클 에셔(Michael Asher)와 한스 하케(Hans Haacke)로 대표되는 50년대의 네오-아방가르드는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패러다임을 지침 삼아 미술 제도에 대한 구체적 탐구와 체계적 작업을 시도한다. 포스터는 이 패러다임의 변증법적 연결이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의 본질적 관계라 주장한다. 네오-아방가르드는 “역사적 아방가르드들이 수행한 것 같은 전통적 매체들의 관례들에 대한 비판을, 미술 제도에 대한 탐구, 말하자면 미술 제도의 지각적이고 인식적이며, 또 구조적이고 담론적인 변수들에 대한 탐구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21] 이 주장은 앞선 것들과 마찬가지로 아방가르드가 가지는 수행적 실천의 인식은 항상 지연되므로, 이후 출몰하는 아방가르드의 창조적 분석에 의해 비로소 포착된다는 말과 같다.

3. 아방가르드와 제도
포스터는 자신의 이론에 대해 예상할 수 있는 지적을 해결하려 한다. 이 지적은 아방가르드 자체에 대해서도 가해진 것들이기에 포스터의 설명은 아방가르드의 실패라는 오명에 대한 답변도 될 수 있다. 아방가르드가 지향했던 미술과 삶의 연결은 문화 산업이 이미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더불어 미술 제도는 전혀 다른 체계로 개편되었다. 포스터는 이에 따라 아방가르드의 전략 역시도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미학적 형식과 문화-정치적 전략, 그리고 사회적 위치 설정”을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22] 이러한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1950년대의 아방가르드와 1960년대의 아방가르드이다. 전에 설명했듯1950년대의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aushenberg)와 앨런 카프로(Allan Kaprow)는 역사적 아방가르드, 특히 다다의 기본 형식들을 다시금 고안했는데 이러한 단편적 복구는 미술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를 제도에 편입시키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으로 설명이 끝난다면 네오-아방가르드는 실패한 반복이라는 뷔르거의 견해에 찬동하는 입장이 되고 만다. 포스터는 정당화를 위한 추가 설명을 위해 프로이트의 개념들을 이용한다. 논의를 이어, 역사적 아방가르드에 대한 제도적 억압은 1950년대의 네오-아방가르드에서 ‘회고’가 아닌 ‘반복’되었다. 포스터는 프로이트를 따라 반복 개념을 회고 개념과 구분하여 사용한다. 간추려 설명하자면 회고는 과거의 경험들을 해석하여 기억을 개정하는 작용이며, 반복은 억압된 기억(혹은 외상)이 무의식적 표상 혹은 징후로 다시 드러나는 것이다. 아방가르드의 모순점들은 반복에 의해 지속되어 온 것이다. 포스터는1950년대의 네오-아방가르드 역시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반복이며 이는 저항적 측면과 수용적 측면을 모두 내포한다고 말한다. 이전의 아방가르드 형식에 대한 양식으로의 물화는 저항적 측면이다. (이 때 저항은 반동적이거나 혁명적인 것이 아닌, 이전의 것과 어떠한 이유에서든 동일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아방가르드를 작업의 지침으로 선택한 것이 수용적 측면이다.
1950년대의 ‘첫 번째’ 네오-아방가르드가 제도가 된 후, 1960년대의 ‘두 번째’ 네오 아방가르드는 이 새롭게 개편된 문화, 정치, 제도적 조건들에 대한 비판을 요구받는다. 브로타스, 하케, 뷔렌과 같은 예술가들이 이러한 체계적 비판을 수행한다. 또한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반복으로서 첫 번째 네오-아방가르드를 비판하며 동시에 역사적 아방가르드를 비판할 수 있게 된다. 이 비판의 수행적 실천이 역사적 아방가르드 혹은 첫 번째 네오-아방가르드와는 달리 체계적이고 분석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포스터가 예로 드는 뷔렌은, 1960년대 이후의 텍스트들에서 뒤샹이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추적하며, 직접적 경험과 아나키즘적 급진성에 대한 비판을 행한다. 이후 모노크롬과 레디메이드를 결합한 줄무늬 회화는, 포스터의 말마따나 “미술의 생산 및 수용의 매개 변수들”을 탐색하는 수단이자 결과이다.[23] 아방가르드 실천을 체계화/정교화하는 방식은 뷔렌의 방식 외에도 많은 예시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술 작품의 발화적 차원을 탐색하는 개념미술, 선진 자본주의 속의 대상들과 이미지들의 수열성을 다루는 팝아트/미니멀리즘, 물리적 현존에 대한 장소특정적 미술, 다양한 담론들을 비판적으로 흉내 내는 80년대의 알레고리 미술, 그리고 오늘날의 성적, 인종적, 사회적 차별들을 파헤치는 시도들”이 그러하다.[24] (나는 이러한 반복이 오늘날에는 신유물론에 기반한 생태 미술 등의 실천으로 확장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포스터는 두 번째 네오-아방가르드가 행하는 비판의 방법이 두 번째 네오-아방가르드를 향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포스터가 이 글을 서술했을 때에도 이 새로운 경향은 이미 시작되었는데, “거창한 반대가 아닌 미묘한 전치”로 저항이 수행된다고 말한다. (신유물론과 생태 미술 역시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에서 비롯되었기에 그것이 아방가르드의 계보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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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연된 작용
모더니즘의 역사는 “하나의 주체로서”(as a subject)로 파악되어 왔으며, 이는 동시대 미술 비평의 방법론에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25] 포스터는 이러한 주체의 복귀가 단순히 생리적인 신체로서의 주체가 아닌 이데올로기 혹은 국가의 구조로 복귀한다고 말한다. 이데올로기와 국가 모두 인식론적으로 주체의 작용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주체의 구조로 파악되는 역사성 분석을 위해, 포스터는 정신분석학의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라캉에게 주체는 언어화의 결과이기에, 주체성은 외상적 사건들의 지연된 작용을 통해서 성립된다. 어떤 사건을 언어화할 수 있는 지점은 그것의 사후(사후성 Nachträglichkeit) 인 것이다. 사건의 언어화는 지연되고, 그것을 다시 약호화할 수 있는 사건을 통해서 비로소 등재된다. 외상은 트리거 이후에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외상적 사건은 항상 트리거와 잇따르는 증상으로만 파악되고, 구조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증상 또한 외상적 사건으로 등재된다. 다시 아방가르드에 이 정신분석학적 모델을 적용해 보면,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는 미리-당김(pretension) 그리고 다시-당김(retension)의 반복되는 작용으로 구조화된다. 즉 아방가르드를 약호화, 언어화하고 해석적 실천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재구성된 과거들과 예상된 미래들을 복합적으로 두어야 한다. 포스터의 표현과 같이 아방가르드는 시대의 상징 질서에 뚫려있던 하나의 구멍이기에 필연적으로 도래할 아방가르드는 그 파열을 상상적으로 심화하거나 다시 상징적으로 봉합한다. 결국 아방가르드는 항상 과거의 재구성이며 예상된 미래로부터의 복귀이며 시간적으로, 역사적으로, 서사적으로 파악되는 복합적인 시공간 층위의 흔적으로 남는다. 이 부재하는 방식의 현존은 자신의 현현을 계속해서 미루는 유령인 것이다.
또한 이러한 설명 방식은,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포스트모더니티의 담론과 실천들이 모더니티의 사후적 관계 속에서 태동했듯이 이 시기에는 유사한 문제와 반복으로서 그에 대한 독해가 이루어진 것이다. 초장에서 설명했던 마르크스와 알튀세, 프로이트와 라캉은 이러한 해석 모델의 적합한 적용 사레이며 푸코가 고안한 담론의 계보학,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에 대한 개념,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페미니즘적 시간성, 자크 데리다의 차연과 같은 담론들은 유사한 문제를 다루는 역사적 상황의 귀납적 예시들이 될 수 있다. 포스터는 데리다를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불가해한 수수께끼가 되는 것은 바로 맨 처음이라는 관념이다. 그러므로 시초에 있는 것은 실로 연기(delay)다.” 데리다는 유령을 항상 다시 돌아온다고(revenant) 말한다. 그리고 라캉은 유령이 불충분한 애도로 인해 되돌아온다고 말한다.[26] 언제나 그렇듯, 충분한 애도는 불가능하다.


[1] 할 포스터, 이영욱 외 역, 누가 네오-아방가르드를 두려워 하는가?, 실재의 귀환, 경성대학교출판부, 2003, pp. 29.
[2] 할 포스터, 위의 책, pp. 30.
[3] 할 포스터, 위의 책, pp. 31.
[4] 할 포스터, 위의 책, pp. 32.
[5] 할 포스터, 위의 책, pp. 32-35.
[6] 할 포스터, 위의 책, pp. 35.
[7] 할 포스터, 위의 책, pp. 38
[8] 할 포스터, 위의 책, pp. 75.
[9] 할 포스터, 위의 책, pp. 45.
[10] 할 포스터, 위의 책, pp. 40.
[11] 할 포스터, 위의 책, pp. 40.
[12] 할 포스터, 위의 책, pp. 42.
[13] 할 포스터, 위의 책, pp. 45.
[14] 할 포스터, 위의 책, pp. 53.
[15] 할 포스터, 위의 책, pp. 49.
[16] 할 포스터, 위의 책, pp. 47.
[17] 할 포스터, 위의 책, pp. 50.
[18] 할 포스터, 위의 책, pp. 53.
[19] 할 포스터, 위의 책, pp. 54.
[20] 할 포스터, 위의 책, pp. 55 참조. “미술 제도는 미학적 관례들에 틀을 부여할 수는 있지만, 미학적 관례들을 구성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1] 할 포스터, 위의 책, pp. 59.
[22] 할 포스터, 위의 책, pp. 64.
[23] 할 포스터, 위의 책, pp. 68.
[24] 할 포스터, 위의 책, pp. 68.
[25] 할 포스터, 위의 책, pp. 71.
[26] 이미선, 애도와 유령: 유령으로서의 문학. 비평과 이론 24 (1), 2019, pp.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