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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aticism: A brief history of the concept
The label "fanaticism" is increasingly attached to the perceived threat posed by religious fundamentalism. But rarely is the history of the term and the variety of its uses examined. Here, a philosophical history of "fanaticism" from Martin Luther to the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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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주의 개념에 대한 간략한 역사 Fanaticism: A brief history of the concept
알베르토 토스카노 (Alberto Toscano)
2006년 12월 7일
유로진(Eurozine)에 게재됨
*: 역주
서론: 현대 담론과 광신주의라는 낙인
오늘날 '광신주의(fanaticism)'라는 라벨은 종교적 근본주의가 제기하는 위협이라는 인식에 점점 더 빈번하게 부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의 역사나 그 사용의 다양성이 검토되는 경우는 드물다. 본고에서는 마틴 루터(Martin Luther)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광신주의'에 대한 철학적 역사를 다루고자 한다.
공산주의 이후의 평온했던 막간극이 테러리즘 위협의 극적인 등장으로 종결된 이후, 의회 민주주의의 '타자(Other)'는 미디어뿐만 아니라 도처에 존재하는 심리학적 '전문가'들에 의해 '광신도'로 묘사되어 왔다. 저명한 인물들은 광신주의를 문화적 증후군, 혹은 초국가적 폭력의 증가를 설명할 수 있게 해주는 깊은 심리적 병리 현상으로 규정했다.
페르난도 사바테르(Fernando Savater)[1]와 알랭 핑켈크로트(Alain Finkielkraut)[2]는 덴마크에서 출판된 무함마드 만평에 대한 항의와 논쟁 속에서 '국경 없는 광신도'라는 새로운 글로벌 주체의 출현을 인식했다. 사바테르의 텍스트가 누구도 예외를 두지 않는 자유지상주의적 성격의 반교권적 불경함을 과시하는 반면, 핑켈크로트는 최근 그의 여러 저작에서 보여주듯 '이슬람적' 불관용과 '그들'의 비자유주의적 광신주의와의 대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프랑스 공화주의의 가면을 쓴 채 헌팅턴(Huntington)의 유해한 '문명 충돌' 테제를 다시 반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경우 모두, 글로벌 미디어를 통해 급격히 유포되는 광신주의라는 구경거리는 관찰과 의견의 대상이 될 뿐, 광신주의의 원인이나 그것이 기원한 현실(가령 덴마크 내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불관용과 같은 현실)은 도외시된다. 오늘날의 이데올로기 갈등 논의에 광신주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정치적, 전략적, 물질적 원인보다는 문화적, 심리적 원인에 더 치우쳐 있는 듯하다. 광신주의는 종종 역사적 사건을 초월하는 불변의 것, 혹은 오리엔탈리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맥락에서 '아랍인의 정신'과 같은 환상적인 실체의 특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개념의 탈역사성은 부분적으로 그 자의적이고 위선적인 사용을 허용한다. 광신주의는 정의상 협상이 불가능한 적에게 투사되곤 한다.
아모스 오즈(Amos Oz)는 『광신도 치유하기(How to Cure a Fanatic)』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광신적으로 반(反)광신주의, 반근본주의자가 되어 '반 지하드 성전'에 착수하는지를 신문이나 TV 뉴스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썼다[3]. 그러나 타자를 '상상'할 것을 주장했던 오즈 본인이 최근 레바논 전쟁에 자극받아 자신의 이성을 저버리고, 어떠한 실증적 혹은 도덕적 검증도 통과하기 어려운 이스라엘에 대한 옹호와 헤즈볼라에 대한 악마화를 제안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의 최근 평론 중 하나의 오웰(Orwell)적인 제목인 "이스라엘의 미사일이 평화를 위해 타격하는 이유"[4]만 보더라도 당파적 반광신주의의 위험성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위험, 특히 종교 정치의 악화와 테러 현상을 식별하기 위해 '광신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일이 늘고 있지만, 이 용어의 계보와 그 적용의 다양성에 대한 성찰은 드물게 수반된다. 그 철학적 역사를 살펴보면 광신주의의 다면적인 측면을 볼 수 있으며, 그 수사적·분석적 기능에 대한 비판을 시작할 수 있다. 이 에세이에서 필자는 정치의 심리학화, 보편의 문제, 그리고 이슬람의 이미지 등 광신주의 담론에서 반복되는 특정 모티프를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철학사적 순간들을 평가하고자 한다.
루터: 광신적 반광신주의
광신주의에 관한 담론은 종교개혁과 함께 수반된 이데올로기적, 신학적, 정치적 투쟁의 용광로에서 생겨났다. 더 정확하게는, 독일 영주들에 대항한 다양한 도시 및 농민 운동에 대한 루터와 멜란히톤(Melanchthon)의 격렬한 논쟁에서 탄생했다. 토마스 뮌처(Thomas Müntzer)와 같은 반란 설교가들에 의해 고무되거나 지휘되고, 부분적으로는 서민적이고 천년왕국적인 공산주의에 의해 추진된 이 운동들은 제후와 성직자의 권위를 거부했다. 그들은 마르크스가 '원시적 축적'이라고 부른 것의 초기 징후들로부터 농민들의 생활 방식을 방어함으로써 노동 생산물의 수탈을 막으려 했다. 개신교의 창시자가 반란군을 규탄하기 위해 사용한 '슈베르머(Schwärmer)'(때때로 '광신주의'로 번역되는 'Schwärmerei'에서 유래)라는 용어는 훗날 칸트의 비판서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1524~25년의 격렬한 전투 속에서 이 개념은 무엇을 지칭했는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용어법에 따라 종교개혁의 이데올로그들은 이 사회 운동에서 지상의 도시와 신의 도시 사이의 핵심적인 구분을 제거하려는 시도, 즉 정치화되고 서민적인 천년왕국설을 통해 지상에서 하늘나라를 실현하려는 광기 어린 추진력을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번역을 인용한 멜란히톤에 따르면, 이는 '시민 사회'의 역할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했다. 루터에게 세속 권위를 전복하려는 시도는 재앙적인 오만의 징표이자 종교적 파국이었다.
루터와 농민 반란군 사이의 갈등은 '광신주의'에 대한 비난이 어떻게 지극히 잔인한(그리고 광신적인) 정치적, 군사적 탄압의 정당화로 변모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루터는 신학적 논거와 정치적 계산(농민 전쟁으로 인한 위기 속에서 종교개혁을 생존시키려는 계산 등)을 혼합하여, 1525년 5월 『강도질하고 살인하는 농민 무리들에 대항하여』라는 글을 썼다. 그 글에서 그는 제후들의 군대에게 반란군을 "개처럼" 몰살할 것을 열광적으로 권고하며, 성 바오로를 인용하여 그러한 전투에서 전사하는 자(제후 측)는 "더할 나위 없이 복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루터는 농민들의 '광신주의', 특히 광신도의 전형인 설교가 뮌처의 사례에서 사회 질서 그 자체에 대한 공격을 보았다.
광신주의 담론의 여명기에 이 용어의 대립적이고 편향적인 성격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째, 이후 프랑스 혁명의 상퀼로트 사례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의 "유행성 광신주의"에 대한 언급에서 볼 수 있듯이, '광신도'는 항상 반항적인 평민을 지칭한다. 광신주의는 종종 사회적 평등에 대한 '미친' 요구로 식별된다. 에티엔 발리바르(Etienne Balibar)의 말을 빌리자면, 독일어 어원은 "대중에 대한 공포"라는 주제를 공유하고 있는데, 광신도는 무리(Schwarm), 즉 평민이자 반란을 일으킨 군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역사 연구 [5]가 증명하듯, 농민 의회의 유지와 세금 경감 등 구체적인 제도적·헌법적 요구를 가진 조직적인 운동이었으며 종교적 담론(복음)을 미니멀리즘적이고 실용적인 용어로 사용했던 이 운동은, 비타협적인 탄압을 정당화하려는 비판자들에 의해 신학적 일탈이자 정신의 질병으로 묘사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의 광신주의
개신교 담론의 '타자'가 반란을 일으킨 농민이었다면, 종교적 광신주의와의 투쟁으로 정의되는 계몽주의는 광신도에 대한 또 다른 모호한 형상들을 제시한다. 볼테르(Voltaire)의 『광신주의, 혹은 예언자 마호메트』(1741)를 예로 들면, 마호메트는 광신도의 종교에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메카의 셰이크를 암살하도록 자신의 자객(séide) 중 한 명을 강요한다. 이 자객은 자신도 모르게 셰이크의 아들이었는데, 도미니크 콜라스(Dominique Colas)[6]는 이 비극을 광신주의가 가족 관계를 포함한 모든 신성한 것을 파괴하는 모독적인 힘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한다. 다른 이들에게는 볼테르의 마호메트가 교리를 믿지 않으면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광신주의를 도구화하는 "스트라우스적(Straussian)" 인물이라는 점[7]이 비극의 진정한 독법이 된다. 보다 일반적으로 볼테르의 작품은 광신주의라는 추상적인 범주와 특정 문화 사이의 단락(short circuit)이 가져오는 효과를 보여준다.
계몽주의 오리엔탈리즘에서 광신주의를 이슬람과 동일시하는 경향은, 이슬람이 단순히 보편적인 병리의 한 사례이거나 가면일 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쉽게 무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광신주의 테마가 문화주의적 담론에서 명확하게 분리되는 것은 칸트(Kant)의 엄격한 계몽주의에 이르러서이다. 칸트에게 광신적 병균은 인식과 실천 사이의 관계, 즉 주체성 그 자체의 구조 안에 존재한다. 『실천이성비판』(1788)에서 칸트는 신에 대한 사이비 지식과 관련된 '종교적 광신주의'와 훨씬 더 위험한 '도덕적 광신주의'를 구분한다. 후자는 단순한 의무를 통해 행동을 올바르게 만드는 대신, 감정이나 고결한 신념, 숭고한 신앙에 도덕의 기초를 두려 한다. 도덕적 광신도는 의무의 보편성에 굴복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쉽게 선의의 살인자로 변할 수 있는 주체이다. 칸트에게 광신주의는 언제나 인간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범법이자 형이상학적 섬망이다.
『판단력비판』(1790)에서 광신주의는 "감성의 모든 경계를 넘어 무언가를 보려는" 욕망으로 "미학적으로" 묘사된다. 이는 일종의 형이상학적 우상숭배에 가깝다(실제로 칸트는 여기서 유대교의 성상 파괴를 찬양한다). 마지막으로, 논문 「사유 안에서 방향을 잡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1786)에서 광신주의는 초감성적인 것에 위험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존재론적 독단주의와 동일시된다.
칸트의 광신주의 담론의 정치적 핵심은 무엇인가? 첫째, 칸트에게 광신주의는 스스로를 보편적이라 믿지만 실제로는 특수주의적인 집착과 연결되어 있다. 이는 칸트가 세계시민주의와 대비시키는 민족주의적 광신주의의 경우이다. 칸트에게서는 루터에게서 마주했던 권위 옹호가 다시 나타난다. 즉, 반란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부인하며 정치에서 권위, 법, 대의 기관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칸트의 신중한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광신주의를 규제적 이념(예를 들어 공화국)과 물질적·주체적으로 긍정될 수 있는 구성적 계획을 혼동하는 것으로 정의했기 때문이기도 한다. "구성적 광신주의"를 무력화하려는 이러한 경향은 프랑스 혁명에 대한 칸트의 복합적인 반응에서 잘 드러난다. 반란을 일으킨 상퀼로트는 암묵적으로 광신적이고 병리적인 인물로 간주되는 반면, 혁명 운동은 그것을 인류 역사의 관점에서 보편성의 징표로 판단하는 관찰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통해 구제되고 보편화된다. 이런 방식으로 칸트의 『학부들의 다툼』(1798)은 혁명의 행위자들을 정당화하지 않으면서도 혁명을 우리 종의 도덕적 성향에 대한 시험으로 간주하며, 광신주의와 열광(enthusiasm)을 구분한다. 여기서 열광은 이상에 대한 열망이되, 그것을 '지금 여기(hic et nunc)'에서 성취하려는 '광신적' 노력으로 흘러넘치지 않는 열정으로 이해된다.
헤겔과 이슬람적 보편성의 과잉
광신주의 개념(헤겔은 Schwärmerei와 Fanatismus를 모두 사용함)은 헤겔(Hegel)의 저작에서 매우 흥미로운 역할을 한다. 칸트에게 광신주의가 인지적·감정적 성향이자 피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충동의 가짜 결과물이었다면, 헤겔에게 광신주의는 정신(Spirit)의 점진적인 보편화 과정에서 필수적인 단계로 묘사된다. 도메니코 로수르도(Domenico Losurdo)[8]가 지적했듯, 칸트부터 헤겔에 이르는 독일 사상은 프랑스 혁명이 대변하는 역사적 트라우마와 해방의 전망에 대한 철학적 응답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혁명의 개념적 전사(transcription)에서 광신주의는 추상적 보편과 구체적 실현 사이의 단락, 즉 어떠한 규정도 능동적으로 거부하는 순수한 부정성으로서의 주체적 자유의 현시로 나타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정신현상학』(1807)에서 헤겔은 추상적·주체적 자유의 이러한 부정적 운동에서 공포 정치(Reign of Terror)와 그 무자비한 의심의 논리 뒤에 숨은 영적 힘을 인식한다.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는 최근 『세기』[9]에서 20세기의 본질을 요약하기 위해 이 아이디어를 다시 가져왔다. 『법철학』(1821)에서 헤겔은 이 주제로 돌아와, 혐의를 받는 개인들을 제거하고 혁명을 결정된 제도적 질서로 안정화시키기를 거부하는 사례에서 보여지는 "파괴의 광신주의"에 대해 말한다. 정치적 영역에서 광신도가 이상의 실현을 위해 투쟁한다면, 그의 "부정적 자유"는 특수한 것의 파괴를 통해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결국 모든 특수한 조직을 치명적으로 훼손하게 된다.
『법철학』의 추가된 내용에서 헤겔은 이러한 "허무주의적" 분노를 국가의 객관성 속으로 종교적 주체성이 주입된 것과 연관시킨다. 종교가 전체성을 향한 엄격한 추진력을 특징으로 하는 반면, 국가는 "기관"들의 분화에 의존하기 때문에 정치에 종교를 도입하는 것은 파괴적이다. 헤겔은 "모든 개별적인 것 안에서 전체를 가지려는 소망은 개별적인 것의 파괴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으며, 광신주의는 단지 특수한 차이들에 여지를 주기를 거부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썼다[10]. 경건함이 국가에 들어오면 그것은 순수하고 폭발적인 불관용으로 드러난다.
이는 급진적인 원칙의 정치를 단순히 자유주의적 혹은 보수적으로 반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헤겔의 역사적 성찰로 주의를 돌려보면, 이러한 파괴의 광신주의와 추상의 공포가 칸트처럼 단순히 건강한 계몽주의 처방을 통해 면역될 수 있는 경향이 아니라, 불가피한 과정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헤겔의 광신주의 개념 사용이 정신의 발전 과정에서 매우 특정한 역할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용법들과 주목할 만한 가소성을 공유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파괴의 광신주의" 개념의 특수성은 다호메이 부족의 의식, 힌두교, 이슬람교 등 겉보기에 무관해 보이는 사례들로의 확장과 병행된다고 할 수 있다. 더 정확하게는, 헤겔의 광신주의 담론에는 유럽 정신의 지극히 내재적인 순간과 비유럽적이고 탈역사적인 '타자'의 등장 사이에 기묘한 단락이 존재한다.
야만적이고 광분한 아프리카, 혹은 절대자의 미지근한 물속에 빠져 죽어가는 인도의 전형적인 이미지들을 제쳐두더라도, 18세기 오리엔탈리즘의 최악을 되풀이하는 듯한 '광신적' 이슬람에 대한 담론은 흥미롭고 때로는 놀라운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우선 헤겔에게 이슬람은 영적·정치적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증상적인 문구에서 헤겔은 이슬람을 "오리엔트의 혁명"으로 정의한다. '오리엔트적 전제주의'[11]라는 유행과는 거리가 멀게도, 그는 이슬람에서 보편화의 운동을 본다. 비록 "오리엔트적 원리"에 지배되어 추상적 통일성(삼위일체 없는 일신교)을 중심으로 함으로써 특수성, 차이, 다양성을 포기하거나 강제로 해체하게 되지만 말이다.*
『역사철학』(1830)에서 이슬람은 유대교적 특수주의를 극복한 승리이자 진정하고 고유한 보편적 성격의 탄생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칸트의 세계시민주의적 사고가 비판한 민족주의적 광신주의의 경우처럼 특수한 것에 대한 병리적 집착이 아니라, 술어와 자질이 없는 주체인 보편성의 '과잉'에서 헤겔은 이슬람의 영적·정치적 한계를 인식한다. 따라서 추상적·부정적 주체성으로서의 광신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헤겔은 결국 오리엔탈리즘 담론을 활성화한다. 즉 이슬람은 분화된 다양체 속에서 스스로를 안정화할 수 없기 때문에 "팽창주의적"이며, 사회적 결속이 국가 제도가 아닌 유일신 알라에 의해서만 부여되기 때문에 "감각주의"로 타락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헤겔은 이슬람의 보편화하는 힘을 인정하면서도, 그 영성이 필연적으로 "황폐한 파괴"로 귀결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판결의 조건이 되는 이슬람의 정치적, 법적, 과학적 사상에 대한 완전한 무시를 제쳐두고 헤겔 담론의 경계 내에 머무른다면, 과연 이슬람적 "광신주의"를 정신의 단순한 막다른 골목으로 취급하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헤겔의 사상이 그것을 급진적 보편화의 운동으로 묘사하는 한, 이슬람적 "광신주의"를 단순히 축출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믿는다. 『종교철학 강의』(1821-31)에서 이슬람의 "순수한 형식주의"는 프랑스 혁명 및 혁명 이전의 유대들을 해체하는 그 "테러리스트적" 해소와 명시적으로 나란히 놓인다. 헤겔주의 국가가 주체성과 자유를 제도적 규정들의 유기적이고 차별화된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한, 헤겔의 역사 사상은 "광신적" 순간의 불가피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진보적인" 성격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추상의 정치적 힘을, 예를 들어 이슬람으로의 개종이 흑인 민족주의의 특수주의를 타파하는 기능을 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지도자 말콤 X의 경험에서 상기하게 된다. 그가 1964년 제다에서 쓴 편지에 따르면, 그에게 이슬람은 "사회에서 인종 문제를 지워버리는 유일한 종교"를 의미했다 [12].
헤겔과 가깝게는, 급진적 보편화의 운동으로서 "광신주의"의 불가피성과 국지적 필요성이 청년 헤겔주의자 아르놀트 루게(Arnold Ruge)에 의해 1842년 「헤겔의 법철학 및 우리 시대의 정치」라는 텍스트에서 주목받았다. 루게에게 광신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필요하게 나타나는가? 당대의 핵심 문제인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성찰하며 루게는 종교가 해방을 향한 열의로 나타나며, 광신주의는 "강화된 종교", 즉 이전의 실패나 해방 경로의 차단에서 비롯된 해방을 향한 열정(Wollust)을 대변한다고 선언한다. 다시 프랑스의 사례가 돌아오는데, 사회적 평등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파괴하려는 그 "미친" 듯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반복된 시도와 함께이다. 광신이 가지는 "실천적 파토스"에 대한 현상학에서 루게는 우리 시대의 동시대인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폭발시켜야 할 것이 있을 때, 사람들은 그것과 함께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자신을 아끼지 않으면서 타인들 또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끔찍하게 희생시킨다"[13]. 오늘날 많은 지식인이 이러한 파토스를 추상적인 의미로 읽을 수 있겠지만, 루게에게 그것은 해방의 열정을 국가 기제 속으로 통합하지 못한 실패의 결과였다. 그래서 그는 "공격해야 할 포대와 목숨 바쳐 방어해야 할 진지가 있는 한, 광신주의 없는 역사는 없을 것"[14]이라고 단언했다.
결론: 자유주의와 광신주의를 넘어
오늘날 루게의 고찰을 명심하는 것이 좋다. 냉전 기간 동안 "전체주의" 담론은 이미 독일 철학에서 상세히 설명되었던 광신주의 개념을 매우 빈약하게 변형하여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이는 프랑스 혁명의 평등주의적 힘을 단순히 무효화하려는 이 담론의 욕망에서 특히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프랑스 혁명은 우리 시대의 모든 악의 근원으로 읽히곤 했다. 국가 사회주의 또한 진지한 역사적·사회학적 분석은 제쳐둔 채 심리학적·종교적 관점으로 읽히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스탈린의 정신 병리에 대한 노골적인 텍스트들은 공포 정치의 제도적 메커니즘을 가렸으며, 굴라그로 이어진 결정들의 실용적 성격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중도주의"가 수행한 역할을 무시했다[15].
광신주의를 사회악의 결과가 아닌 원인으로 간주해 온 20세기의 반공주의 사상(예를 들어 에밀 시오랑[16]과 레이몽 아롱[17]의 고찰)은 한편으로는 회의주의와 타협의 자유주의, 다른 한편으로는 광신주의라는 순수하게 이데올로기적인 이분법을 낳았다. 이러한 사상가들에게 광신주의는 단순히 이성의 잘못되었지만 불가피한 경향(칸트)이나 인류 발전의 필수 단계(헤겔)가 아니다. 그것은 박멸해야 할 병리이다.
이러한 시각은 회의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 또한 거대한 해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과 모든 반동주의자를 '광신도'로 분류할 수는 없다는 점을 망각할 뿐만 아니라, 루게의 교훈 또한 무시하고 있다. 즉, "광신주의 없는 역사"는 추상적인 사상의 싸움이 아니라 실제적인 해방의 정치의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광신주의라는 용어를 단순히 폐기해야 함을 의미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위대한 사상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이제 우리 동시대인들은 광신주의를 단순히 절대적인 적을 제거하기 위한 부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위한 정밀한 역사적·정치적·심리학적 개념으로 재사유해야 한다. 아마도 그 첫 번째 단계는 광신주의를 특정 행동과 정치 담론의 술어로 취급하는 것이며, 정치적 주체들을 무조건적으로 '광신도'라고 규정하는 것을 삼가는 일이 될 것이다. 루터와 반란 농민들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적을 '광신도'로 지칭하는 것은 종종 그들을 "개떼" 혹은 "불법 전투원"*으로 취급하기 위한 불길한 전조가 되기 때문이다.
* "orient"는 그 역사적 맥락을 보존하기 위해 동양 혹은 동방이 아닌 '오리엔트'로 번역함.
** 군복 착용이나 무기 공개 휴대 등을 준수하지 않고 무력을 행사하는 민간인 혹은 비전투원.
각주
1 Fernando Savater, "Fan�ticos sin fronteras", El Pa�s, 11 February 2006, http://www.atrio.org/?page_id=96.
2 Alain Finkielkraut, "Fanatiques sans fronti�res", Libération, 9 February 2006.
3 Amos Oz, How to Cure a Fanatic,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6 [the title of the shorter UK edition is Help Us to Divorce, London: Vintage, 2004]. For pointed critiques of Oz and other left Zionist intellectuals, see Yitzhak Laor, "You are terrorists, we are virtuous", London Review of Books, 17 August 2006, 11, and Ran HaCohen, "Israeli Intellectuals Love the War", http://www.antiwar.com, 7 August 2006, antiwar.com/hacohen/?articleid=9486.
4 Amos Oz, "Why Israeli missiles strike for peace", Evening Standard (London), 20 July 2006. http://www.findarticles.com/p/articles/mi_qn4153/is_20060720/ai_n16673185.
5 Peter Blickle, From the Communal Reformation to the Revolution of the Common Man, Amsterdam 1998.
6 Dominique Colas, Civil Society and Fanaticism: Conjoined Histories, trans. Amy Jacobs,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7.
7 Fran�ois Busnel, "Voltaire, le retour", Lire, July-August 2004.
8 Domenico Losurdo, "Liberalism, Conservatism, the French Revolution, and Classic German Philosophy", in Hegel and the Freedom of the Moderns, Durham 2004, 305.
9 Alain Badiou, The Century, trans. A. Toscano, London: Polity, 2007.
10 G.W.F. Hegel, Philosophy of Right, para. 270, added by Eduard Gans. Available at: http://www.marxists.org/reference/archive/hegel/works/pr/prstate.htm.
11 Alain Grosrichard, The Sultan's Court: European Fantasies of the East, London: Verso 1998; Maxime Rodinson, Europe and the Mystique of Islam, Seattle: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1987.
12 Malcolm X Speaks, ed. G. Breitman, New York: Grove 1965, 59.
13 Arnold Ruge, "Hegel's Philosophy of Right and Politics in Our Times", in The Young Hegelians: An Anthology, ed. Lawrence S. Stepelevich, Cambridge 1983, 236.
14 Ibid.
15 Isaac Deutscher, Stalin, A Political Biograph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67.
16 E.M. Cioran, "Genealogy of Fanaticism", in A Short History of Decay, trans. R. Howard, New York: Arcade 1998.
17 "Le fanatisme, la prudence et la foi", Preuves, January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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